부산 동삼동 신석기인의 조개탈(한국인의 얼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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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11 00:00
입력 1994-11-11 00:00
◎가리비조개 껍질로 만든 「신앙 가면」/지도자의 위엄 과시… 무서운 얼굴 강조/실제론 퀭한 눈·벌린 입의 우스운 모습

우리나라 해안에는 선사시대의 쓰레기 매립장이 여러 곳에 분포한다.속살을 발라 먹고 내다버린 조개껍질 따위를 한군데다 차곡차곡 쌓아 제법 큰 동산들을 이루고 있다.이는 신석기시대 문화상을 밝히는데 더 없이 귀중한 자료들이 묻힌 조개더미(패총)유적이다.타임캡슐의 보고 구실을 한 쓰레기 더미라고나 할까….그러나 이들 유적은 무공해 쓰레기로 채워졌다.

한반도 남단의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 조개더미도 바로 이런 유적이다.이 유적에서는 얼굴을 가리는데 실제 사용되었을 법한 조개탈이 나왔다.길이가 11.5㎝나 되는 조개껍질에 두 눈과 입을 뚫어 사람얼굴모양을 나타냈다.탈은 신앙가면의 일종이다.원시사회에서는 집단생활을 위해 비인간적으로 가장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위엄을 갖춘 권력자로 군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신석기인들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무서운 모습의 형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상상력에한계가 있었던 이들은 신령이나 악귀·요귀를 표현하는데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결국은 동삼동 탈이 보여주는 것처럼 신석기인 자신들을 닮은 얼굴을 만들어낼 도리 밖에 없었다.퀭한 눈과 딱 벌린 입이 무섭기 보다는 우습다.

동삼동 신석기인들이 만든 탈의 소재는 가리비과에 속하는 조개.개흙질이 적은 남해안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조개더미를 발굴했을 때 31종의 조개류와 고래뼈·사슴뼈 등이 조사되었다.고래뼈는 동삼동 사람들이 먼 바다에 나가 잡은 포경 활동의 산물인지,아니면 연안해변에 들어온 것을 막대기로 때려잡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그러나 동삼동 사람들의 해양활동이 대단했다는 정황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의 해양활동은 일본 규슈(구주)로 연결되었다.동삼동 사람들이 만든 빗살문(즐문)토기가 일본 신석기문화의 대표유물 소바타(증전)토기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소바타토기가 쏟아져 나온 일본 나가사키(장기)이웃 아기리키(이목력)유적에서는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광엽수종(광엽수종)의 통나무배(길이6백50㎝,너비76㎝)가 발굴되었다.이 배는 과학적 방법의 연대측정에서 지금으로부터 5천6백여년전에 만들어진 유물로 밝혀졌다.그러니까 이 배는 소바타토기가 만들어진 서기(BC3500∼3000년)보다 약간 앞서 해류와 노에 의존해 일본 큐슈지방에 당도,토기문화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동삼동 사람들은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흑요석을 싣고 귀항했다.조개더미에서 나오는 흑요석 석기들의 원산지가 일본 규슈지역 고시다케(요악)라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그래서 동삼동 조개더미는 대단한 신석기유적으로 평가된다.모두 5기의 층위를 가진 이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7천년전에서 1천년전에 이르는 시기에 버린 조개껍질 토기조각 등으로 이루어졌다.

조개더미 맨 아래층에서는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 출토품과 같은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덧무늬(융기선문)토기가 나오다가 위로 올라가면서는 빗살문토기가 집중 출토되었다.그리고 뼈낚시바늘과 함께 연해주쪽과 규슈 쪽의 신석기토기가 쌀의 뉘처럼 이따금씩 끼어나왔다.영토개념은 없었던 시대라 할지라도 출토유물은 가히 국제적이다.당시 동삼동은 오늘의 홍콩과 같은 원시 중개무역항이었을 것이다.<황규호기자>
1994-11-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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