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시 뵐수 없나요”/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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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23 00:00
입력 1994-10-23 00:00
◎“사고 날벼락” 안암국교생들 눈물 범벅

『다시는 선생님을 볼수가 없는 건가요』

22일 상오 9시10분쯤 서울 성북구 안암동 안암국민학교 전체교실에서는 출근길에 성수대교사고로 희생된 이 학교 윤현자(59)·최정환교사(55)에 대한 어린이들의 추도묵념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문에서부터 시작된 숙연한 분위기는 교실안 어린이들의 흐느낌으로 이어져 평소와 같은 토요일 아침의 들뜬 분위기는 어디서고 찾을 수 없었다.

윤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2학년 4반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날 아침에야 전해들었다.4반 어린이들은 묵념이 시작되자 서로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어 장내가 울음바다가 됐다.

교실앞 윤교사의 책상위에는 『어린이들을 잘 가르치기위해서 때로는 매도 필요하다』고 얘기해오던 노선생님의 「사랑의 매」만이 주인을 잃은채 덩그마니 놓여있었고 의자에는 윤교사가 교실에서 항상 입던 보라색 셔츠가 생전처럼 그대로 걸려 있어 어린이들의 슬픔을 더했다.

『선생님은 분명히 천당에 가실거예요.친할머니 같았으니까요』

정다운양의 모아쥔 두손에는 가신 선생님에 대한 애틋한 기도가 가득 담겨있었다.

최교사의 3학년2반 어린이들은 이미 사고당일인 21일 낮 선생님들끼리 모여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놓았지만 임시로 한 학부모가 들어와서 진행하는 수업중에도 혹시나 선생님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흰 국화 한다발이 놓여있는 교탁에만 연신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허리디스크로 몸이 불편하면서도 『몸이 약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며 자신들과 축구도 함께 하던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젖은 눈가에 가득했다.

말썽꾸러기였지만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던 김규훈군은 『복도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벌청소를 할때 「앞으로는 떠들지말고 공부열심히해라」고 한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 자꾸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슬픔이 가득한 학교를 뒤로 하면서 불시에 따르던 선생님들을 잃은 동심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야 할 것인가 착잡한 마음이었다.
1994-10-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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