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목소리 높이는 옐친/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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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9-29 00:00
입력 1994-09-29 00:00
클린턴대통령은 환영사에서 『오늘 우리는 냉전시대의 적으로서가 아니라 더 번영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동반자로 만나는 것』이라며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이익은 더 이상 러시아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클린턴은 또 『일부 견해를 달리하는 문제가 있다면 냉전이 아닌 화평의 분위기에서 이견을 해소할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옐친대통령은 답사에서 『미국은 튼튼한 동반자이지만 동시에 거래하기가 쉽지않은 동반자라고 할수 있는데 그런면에서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라며 이틀간의 회담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양국 대통령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로 자리를 옮겨 양측 기록자만이 배석한 가운데 단독정상회담에 들어갔다.당초 예정된 30분의 단독회담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들은 다시 정원의 테라스 파티오에서 두시간을 더 대좌했다.
두 대통령은 환영식장의 외교사령과는 달리 본격적인 「거래」에 들어갔던 것이다.그러나 두 사람은 보스니아 회교도에 대한 무기 수출입금지조치 해제와 러시아의 대이란 재래식무기 판매중지문제를 싸고 팽팽히 맞섰다.
클린턴이 「보스니아 무기금수해제」를 밝히자 옐친은 단도직입적으로 『전쟁을 확산시킬 뿐』이라고 반대하면서 보스니아문제 논의를 위한 국제회의를 제의하며 역공했다.
또 클린턴이 이라크,리비아,북한과 함께 「국제부랑자」인 이란에 러시아가 잠수함 미사일기술등을 판매하는 것은 국제테러리즘을 조장한다며 중지를 요청했으나 엘친은 아무런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클린턴대통령과 가진 지난 두번의 정상회담에선 워싱턴측에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쪽이었다.그러나 18개월이 지나는 사이 옐친은 어느새 「냉전의 적」은 아니지만 「당당한 거래자」로 변모한 것이다.
구소련 붕괴이후 미국이 유일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국제문제가 결코미국의 구도대로 풀려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옐친의 워싱턴방문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1994-09-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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