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보호/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장(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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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9-28 00:00
입력 1994-09-28 00:00
경주박물관의 정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뜨락 오른편의 종각에 매달려 있는 성덕대왕신종이다.「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범종은 그것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이나 뛰어난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오히려 만드는 과정에서의 애틋한 사연으로 더욱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사연의 실마리를 되새기면서 막상 이 거종을 대하는 이들은 우선 오랜 세월 속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더욱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자리잡기까지 천수백년동안에 이 범종이 겪어온 갖은 풍상을 아는 이들은 이러한 모습을 기적처럼 여기고 있다.

이 종이 박물관으로 옮겨진 뒤에도 해마다 섣달 그믐날 자정에 맞추어 그 장중하면서도 신비스런 제야의 종소리가 온누리에 울려 퍼졌다.그러나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비바람에 시달려온 이 종을 아무런 진단도 없이 엄동설한의 혹한기에 서른세번씩이나 타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겉으로는 별탈이 없어 보인다고는 하지만내부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채 타종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모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재작년 이후 박물관에서는 이 제야행사를 중단하고 일단 정밀한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진단 결과 별다른 탈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이상 다행스러울 수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더 이상의 타종은 곤란할 것이다.우리 국보중의 국보라 할 수 있는 이 종은 오늘의 우리것이 아니라 천년만년 이어질 우리 후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는 지난 봄부터 야외음향시설을 갖추고 하루에 네차례씩 시각에 맞추어 타종녹음을 방송하고 있다.보다 안전한 에밀레종의 보존을 위해서 우리는 실제 소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기계음으로 만족하면서 이 종이 만세에 전해지길 기원해야겠다.
1994-09-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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