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다자외교/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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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4-03 00:00
입력 1994-04-03 00:00
미국 국무부의 갈루치차관보와 중국의 진건주유엔차석대사가 막바지 담판을 벌이고 있을 무렵,한승주외무부장관은 마치 교수처럼 동행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를 위한 책상과 의자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나 굳이 마다하고 책상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서 기자들을 마주했다.그도 무의식적인 스스로의 행동에 지난날 교수시절의 「향수」를 느낀듯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미국 방문 3일을 마치 연극에서의 독백처럼 정리했다.『상황이 분초를 다툴 정도로 바뀌고 있다.그런 것을 어느 정도 정확히 알리는 과정에서 마치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미안하다』 그 「강의」는 이렇게 반성으로부터 출발 했다.

어떤 상황이든 그것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 들고 특유의 이론을 전개하는데 탁월한 한외무.그에게도 다자외교의 불가측성은 벅찬 것이었을까.그는 「널뛰는 한국외교」라는 여론의 비판을 나름대로의 논리로 풀어헤쳤다.

「북한핵 게임」이 유엔을 무대로 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고,그러다 보니 경기자가 많아지고 변수도 그만큼 늘었다는 게 그가 펼친 강의식 간담회의 핵심이었다.우리의 역할과 영향력이 여전히 꽤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그 가운데 하나(One of Them)」가 되어 어쩔수 없는 영역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책임을 상황의 탓으로 넘기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하루에 해외공관으로부터 보고된 4천여장의 전문을 읽고,그래서 항상 넘치는 정보 속에 매일을 사는 자기로서도 예측할수 없는 일이 생기고 있다는 정책결정자의 솔직한 고백으로 들렸다.

퍼센트(%)로 상황을 곧잘 비유하는 한장관은 언젠가 『한국외교는 정부가 60%,언론이 40%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한국외교의 40%는 정부의 몫이 아닌 것 같다는 외교사령탑으로서의 경험담이었다.



굳이 한장관의 말이 아니더라도,「유엔」은 한국외교의 많은 부분이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현장이었다.그리고 철저히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힘의 무대였다.

한장관의 반성도 「우리의 양보는 있을수 없고 꼭 양보를 받아야만 한다」는 이상과 「국제사회의 한 귀퉁이」라는 현실의 괴리 속에서 비롯된 우리 외교의 현주소일 뿐이다.<뉴욕에서>
1994-04-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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