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명암 교차/문민정부 재벌위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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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8-08 00:00
입력 1993-08-08 00:00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현대는 요즘 기분이 언짢다.심하게 말해 삼성이 얄밉게 느껴진다.삼성이 「잘 나가면 나갈수록」 그에 비례해 초라한 생각이 들고 약이 오른다.단순한 치기나 배아픈 차원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최근들어 「현대맨」들은 『갈수록 주눅이 든다』는 말을 자주 한다.신정부 출범후 5개월 가량이나 지났으면 「면역」이 됐을 법도 한데 도무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그만큼 현대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는 얘기이다.
신정부가 출범한뒤 재계는 「침묵」을 지키며 복지불동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유독 삼성만은 총수인 이건희회장이 질경영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고 「재계개혁」을 선도하며 홀로 뛰고 있다.
이에 대한 현대의 입장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어찌된 일인지 대단한 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이회장은 87년 대권을 이어받은 뒤 지난 5년동안 침묵해 왔다.그때까지만 해도 삼성의 이회장은 현대의 정주영 회장보다 지명도가 떨어졌고,그룹 이미지도 현대가 삼성보다 앞섰다.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그는 요즘 현대가 삼성에 대해 갖는 감정의 이면에는 박탈감으로 인한 무력감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지난해 대선이 끝나고 정명예회장이 정계은퇴를 선언한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산업은행 시설자금이 풀릴기미는 여전히 없다.그룹 전체가 돌파구를 믿지 못해 침체된 상황에서 해외사업을 중심으로 재도약을 꾀하려 해도 여의치 않다』
이는 자신들은 손발이 묶여 있는데 라이벌 삼성은 재계의 대명사로 부각되고 있어 밉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도 삼성이 「양지」에서 주목받는데 반해 현대는 「음지」에서만 부각된다고 지적하고 있다.삼성이 질경영을 기치로 내걸고,재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기대를 모으는 데 비해 현대는 노사분규의 대명사로 「낙인」찍힌채 운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이회장이 움직이는 것은 괜찮지만,정명예회장이 움직이는 것은 안된다는 쪽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현대그룹 안에선 『오죽했으면 왕회장이 입원까지 했겠느냐』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현대의 한 임원은 얼마전 『우리의 장점은 저돌적인 추진력』이라며 『다시 한번 해외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이제 앉아서 받는 「천형」에서 벗어나 남은 「대가」를 움직이며 치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재계의 양대 산맥인 삼성과 현대가 더불어 움직이면 지금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요즘 서울 계동 현대사옥 주변의 지배적인 분위기이다.<김현철기자>
1993-08-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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