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매듭 아직 멀었다/박용옥 성신여대교수 사학(일요일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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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8-08 00:00
입력 1993-08-08 00:00
인류사를 돌이켜 볼때 피정복지의 여성들은 정복자들에 의한 강간으로 인하여 2중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그 강간행위는 대개 인면수심한들 개개인에 의한 것이지 일본처럼 국가가 주관자가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그런 점에서 볼때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적 노예가 된채 자유없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정신대의 문제는 인류사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하며 행위 발의 및 주관자는 그에 대한 백배사죄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또한 고통당한 생존자에게는 마땅히 응분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명백한 국가주도

한국인에게 있어 여성의 정절문제는 여성 자신에 한하는 것이 아니었다.이것은 실로 민족정신과 문화의 우뚝한 긍지였다.일본의 무력에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해야 했던 1876년 대표적 위정척사론(위정척사론)자인 최익현선생은 목숨을 걸고 조약체결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반대이유의 하나가 『저들이 우리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들을 겁탈할 것』이라는 이유였다.이것은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가 유린되고 말것을 예언한 것이다.그러나 최익현선생조차도 일본이 국가적 주관아래 한국여성을 유린할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4일 일본정부가 내놓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방장관의 담화및 조사결과의 발표문은 작년 7월에 「강제성을 인정할 자료는 없었다」고 발표하였던데 비한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는듯 보이나 과거 반성의 진실된 태도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하겠다.

정신대 문제의 중요 쟁점은 첫째 「강제성」의 인정이다.이들은 이에 대하여 「종군위안부 모집이 감언 강압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는 지극히 우회적 표현을 썼으며 위안소 생활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상황」이라는 소극적 표현을 쓰고 있다.

○용서못할 비인도

둘째 종군위안부의 규모인데 이에 대하여 「충분한 자료가 없어 위안부 총수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표현함으로써 정확한 숫자발표에서 오는 막중한 죄의 책임을 희석하고 있다.1930년대초 이래 패전 직전까지 강제 연행된 한국여성의수는 줄잡아 20만명인 것으로 그동안의 조사연구자에 의해 밝혀져 있다.일본에는 우리가 아직 접하지 못한 보다 많은 자료가 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다.자료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이며 오만한 태도이자 더 나아가 자신의 죄를 아직도 감추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셋째는 일본정부의 사죄의 태도이다.이에 대하여 담화문에서 「상처입은 모든 사람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했다.강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막다른 길에 든 자나 하는 행위이다.그렇다면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인류의 평화적 삶의 권리를 강탈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그런데도 그들이 작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때 행해지는 정도의 용어인 「사과」라고 표현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행위인 것이다.일본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 당수가 말한 것처럼 영어의 「Apologize」에 해당하는 용어인 「사죄」라는 용어를 겸허한 자세로 썼어야 했다.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언급의 진실성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교훈 돼야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이번의 일본측 발표를 통해 양국 정부는 외교적 차원의 논란을 매듭지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정신대의 문제는 한일 양국 국민에게 다같이 큰 역사적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자료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일본에는 전범자로서의 만행과 죄악상이 얼마나 끔찍하고 인류사에 수치스러운 것인가를,또 한국인에게는 나라 잃은 슬픔과 참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하는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자료의 발굴조사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과감히 이루어져야 한다.민간 연구자는 물론 국사편찬위원회와 같은 공공기관을 통해서도 책임있는 자료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일본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원자탄 피폭 박물관이며 평화공원을 세워 해마다 그날을 기념함으로써 일본2세로 하여금 전쟁피해자가 바로 일본인 것처럼 착각케 하는 사업을 행하고 있는데 자신의 죄를 진정 반성한다면 전쟁중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 희생된 영령들에게 사죄하고 위로하는 기념관 내지 사죄사업을 행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1993-08-0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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