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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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22 00:00
입력 1993-07-22 00:00
◎전형적「역사왜곡」의 실례/「일본서기」 근거로 제시… 고사기엔 단 한줄도 없어/「일본」7세기 등장… “369년부터 2백년 지배”는 허구

「일본의 야마토(대화)조정은 4세기후반 한반도 남부에 진출,백제·신라·가야(임나)를 지배했으며 특히 가야지역에는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구를 둬 6세기중엽까지 직접 통치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어처구니 없어 할 이같은 내용이 일본의 각급학교 역사교과서에는 버젓이 실려 있다.이것이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저 유명한「임나일본부」설이다.

일명「남선경영설」이라고도 불리는「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 17세기초에 등장,19세기말에는 나름대로 이론체계가 세워져 일본 학계의 정설로 뿌리내렸다.이 설의 근거로 제시된 것이 일본의 역사책「일본서기」의 기록이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는『신공황후가 369년 왜군을 한반도에 보내 7국과 4읍을 점령한 뒤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했으며 이 임나일본부는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그 지역을 통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일본 사학계는 신공황후가 정벌한 7국의 지명을 고증한 결과 해당지역이 당시의 가야제국이었으며 따라서 일본이 가야지역을 2백년 가까이 통치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본측 주장을 국내 학계는『전형적인 역사왜곡』이라고 일축하고 있다.우선「임나일본부」라는 명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일본」이 위란 나라이름이 역사에 등장한 때가 7세기이므로 4세기에「일본부」라는 기관이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신공황후의 임나정벌」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한국·일본의 사서에 이처럼 중요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을 리 없는데,한국측 사서는 물론 일본서기보다 8년 먼저 편찬된 일본의「고사기」마저 단한줄도 싣고 있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더욱이 임나일본부가 2백년동안 존재했다면 가야지방에서 일본유물이 적잖게 출토되어야 하는게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단한점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 설의 허구성을 입증하는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일본 학계는 자신들이 지닌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위해 광개토대왕비문과 칠지도의 명문을 또다른 증거물로 제시하며 한국학계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비문의 「신묘년기사」는 한·일·중 3국의 학자간에 해석이 분분한 상태이며 또 칠지도에 새겨진 글도「백제왕이 왜왕에게 바친 것」이라는 일본측 주장보다는 「백제왕이 하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훨씬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나일본부설은 여전히 일본 학계에서 정설로「공인」돼 있으며 대부분의 일본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있다.그러나 최근 양식있는 일부 일본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를 솔직하게 부인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그동안 교과서나 사전류등에서「임나일본부설」자체를 다루지 않았다.일본측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국제화시대를 맞아 한일 양국민간의 접촉이 잦아지는만큼 우리 국민도 일본측의 거짓된 주장을 확실하게 알고 대응해야만 한다』는 논의가 요즈음 국내 학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다.<이용원기자>
1993-07-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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