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출현(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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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6-17 00:00
입력 1993-06-17 00:00
◎고구려­백제­신라 순으로 건국/「삼국사기」,신라가 고구려보다 앞선것으로 “오기”/고구려,현도군 몰아낸 BC75년에 성립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민족사의 주도권을 놓고 다툰「삼국시대」는 삼국간에 쉼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민족문화의 질과 양을 드높인 시대였다.철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돼 농업생산기반이 확립된 바탕 위에 각국은 불교의 도입,중국의 왕조들및 위와의 교류등을 통해 저마다 개성있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서기전 1∼2세기부터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까지를 일컫는「삼국시대」의 초기모습은 상당부분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대표적인 예가 삼국의 건국연대다.

삼국사기에는 각국의 건국연대를『고구려 서기전 37년,백제 서기전 18년,신라 서기전 57년』으로 밝히고 있다.신라가 삼국중 가장 먼저 건국됐다는 이 기록은 그러나 국가의 발달단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발달단계란 「사람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사회발전에 따라 점차 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말한다.국내 학계에서는 한국사의 발달단계를 보통 성읍국가(부족국가)에서 군장국가­연맹왕국을 거쳐 중앙집권국가(고대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이론을 적용하면 고구려는 한군현의 하나인 현도군을 몰아낸 기원전 75년 이미 5부족이 주축이 된 연맹왕국단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동가강 상류 비류국의 송량왕과 싸워 굴복시켰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부여출신의 주몽일파가 기존세력을 누르고 연맹체내에서 주도적인 부족으로 떠오른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구려는 이후 부여와의 경쟁,주변소국에 대한 정복등을 통해 태조왕대(53∼145)에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반면 마한의 소국 백제국에서 발전한 백제나,진한의 사로국에서 출발한 신라의 건국설화는 그 자체가 성읍국가의 형성단계에 머물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백제는 고구려 유민인 온조(주몽의 아들로 기록됨)가 한강유역에 처음 세웠으며 고이왕대(234∼285)에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했다.신라도 경주부근의 사로국에서 시작해 내물마립간(내물왕)집권기인 356∼401년에 비로소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결국 고구려·백제·신라가 1백여년씩의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고대국가를 형성한 것이다.이 3국과 비슷한 시기에 장기간 존재하던 부여·가야가 한국사의 본류에서 밀려난 것은 연맹왕국단계에서 3국에 흡수됐기 때문이다.

한편 삼국사기에서 3국의 건국연대를 신라­고구려­백제순으로 서술한데 대해 동국대 이기동교수는『신라의 건국연대를 서기전 57년으로 설정한 것은 신라의 건국이 고구려보다 앞서는 것으로 조정하기 위해서이며 특히「서기전 57년」으로 못박은 이유는 그 해가 60간지의 첫해인 갑자년에 해당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이용원기자>
1993-06-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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