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생각해보는 스승의 날에(박갑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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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5-15 00:00
입력 1993-05-15 00:00
우리말 「가르치다」에는 덕육(덕육)의 정신이 어린다.중세어는「□□치다」이다.이「□□」는 가루(분)를 뜻하는 말인「□­□□」와 맥을 함께한다고 생각한다(최창렬교수의「우리말 어원연구」).가루 만드는 이치 따라 문질러서 「갈」(마)면 물건을 마음에 맞게 다듬는 「갈」(도:칼의 옛말)이 된다.밭을 「갈」(경)아 씨뿌리면 열매를 맺게 되고 사람을 갈(마)면 미욱함을 슬기로움으로 「갈」(개)게 할수 있다.

「□다」라는 중세어는「말하다­이르다」는 뜻이었으니 말하는 것이 곧 상대방의 마음밭을 「갈」고자 함이었음을 알겠다.사물(사물)을 「가리」고 「가른」다는 것은 분별능력을 뜻함이기도 하다.그렇게 여러가지 뜻을 갖는 「□­□□」에 「치다」가 붙어서 된말이 「가르치다」이다.「치다」는 물론 「기르다」는 뜻이다.

한자의 「가르칠교」는 「기」(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줌.위에서 가르침을 베풂)과 「문」(학의 옛글자라함.아래서 배움)의 합자라 한다(설문).그에서 볼때 「가르치다」라는 말의 뜻이 훨씬 깊음을 알겠다.더구나 서양쪽말과 비겨보면 더욱 그렇다.가령 영어의 education은 educe에 추상명사어미 ­tion이 붙어 이루어졌다.그educe는 「추출(추출)하다」로서 지성의 개발을 뜻한다.독일어 Erziehung도 erziehen+ung인바 erziehen은 영어에서와 같이「추출하다」는 뜻이다.우리가 교육에서 덕성을 중시하는데 비해 저쪽은 지성을 생각함이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러했기에 나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에 대한 예절도 서양과는 달랐다고 하겠다.일화많은 오성 이항복의 예를 보자.­그가 영의정이 되었다.정부의 어떤 고관도 절을 올려야 하는 신분이다.그의 집으로 어느날 초라한 선비가 찾아왔다.오성은 버선발로 뛰어내려가 맞아들여 절을 올린다음 고개숙여 그의 말을 경청하는게 아닌가.그는 공이 어렸을때 가르침을 받은 스승 신훈도였다.이튿날 떠나는 스승에게 면포 10여필과 쌀 두섬을 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여행에 필요한 것은 두어말 쌀이면 족하오』(창석이문록).제자다운 제자에 스승다운 스승이었다고 하겠다.

「□□치다」는 우리말에 걸맞은 스승을 생각해 본다.거칠어져 있는 마음밭을 갈아주는 스승이다.누리에 빛을 뿜는 구슬일수 있게 갈아주는 스승이다.바르게 가르고 옳게 가릴수 있도록 밝은 마음자리로 갈아(개)주는 스승이다.오늘이라 하여 어찌 그런 스승이 없다고야 하겠는가.하건만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것만 같은 작금의 세태속에서 스승의 날을 맞는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5-1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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