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기/부엌엔 늘 소금·나물밖에 없어(역사속의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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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3-04 00:00
입력 1993-03-04 00:00
그가 사는 세칸 초가는 겨우 비바람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초라했고 부엌에는 늘 소금과 나물밖에 없었으나 이를 오히려 떳떳하게 생각했다.그는 국가에서 받는 녹봉을 가까운 친척중에 고아가 됐거나 지아비를 여윈 사람들에게 먼저 나눠 주었다.주위사람들이 그의 빈한한 살림을 걱정하여 끼닛거리라도 보낼라치면 오히려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극구 사양했다.
이처럼 곧은 성품은 공직생활에까지 이어져 부당한 일에는 비록 임금의 하명이라도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그가 수천으로 있을 때 연산군이 사초를 보려고 하자 홀로 부당함을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파면을 당하기도 했다.국왕이 역사편찬을 위한 사초를 미리 보고 잘잘못을 따지고 든다면 훗날 역사기술이 왜곡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일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조종조지법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중종반정이후 귀양에서 풀려나 관직에 복귀한 그는 성종때 조정의 추천으로 기개가 곧은 관리로 뽑혀 판의금부사로 승진했다.또 당대의 청백리중에서도 가장 청렴한 관리로 인정받아 가선대부로 임명됨과 동시에 전라감사로 특별승진했다.
평소 선비의 참된 길은 벼슬길에 있지 않고 학문을 정진하는데 있다고 주장해온 조원기는 훗날 개혁론자로서 영욕을 함께 맛본 조카 조광조가 벼슬길에 오르려고 하자 「벼슬에 임하는 것은 칼날을 밟고 올라서는 것과 같다」며 그 어려움을 경계하곤 했다.또 맹자의 말을 인용,「벼슬이란 가난하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수도 있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벼슬을 해선 안된다」고 조카에게 타이르곤 했다.
그는 특히 후학들을 위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배우되 주의의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 말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곤 했다.<우득정기자>
1993-03-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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