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집 안가겠다나”(박갑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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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1-14 00:00
입력 1992-11-14 00:00
상허 이태준(상하 이태준)의 단편 「결혼」에 나오는 주인공은 S.호수돈 여학교를 졸업하기 두어달 전에 혼담이 나온다.상대는 서울 재상가의 자손으로 일본가서 법률공부한다는 사람.재산가이기도 하다.그 말을 끄집어낸 어머니에게 S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시집가겠다나』

이 말은 「시집 안가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그런데도 제 방으로 건너가 수틀 잡은 손이 떨린다.아니,수틀이 떨린다.이럴 때의 「안가겠다」는 「가겠다」는 의사의 보다 강도높은 표현이랄 수 있다.한데,여학교가 아니라 대학을 나오고도 몇년이 지나도록 시집안간 요즘의 노처녀 딸들은 그 어머니가 꺼내는 혼담에 이렇게 대꾸한다.

『누가 시집 안가겠다나』

이 말은 「가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다.그러면서도 잡고 있는 커피잔이 떨리기는 커녕 여유있는 웃음을 흘린다.이런식 표현의 「가겠다」는 「안가겠다」는 의사표시보다 더 밉살스럽게 들리는 것이 어머니의 귀.딸자식의 이 「누가 시집 안가겠다나」로 고민에 빠진 어머니(아버지까지도)들이 많아져 가는 세상이다.

얼마전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한 조사결과를 내놓았다.미혼남녀·기혼부인 1만1천2백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결혼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이 좋다」는 항목에 11%가 응답한 것으로 나타난다.주목되는 것이 여성쪽 반응.「안하는 것이 좋다」에 14.1%가 찬성함으로써 남성(7.6%)보다 2배정도 부정적 시각임을 보여준다.이보다 앞서 행해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의 조사결과는 조사대상이 젊었던 만큼 더 놀라운 숫자.「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에 10대 여성은 60%,20대 여성은 54.9%가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10대·20대의 생각이 고정적인 것일 수는 없다.생각이 그렇다는 것뿐 여건따라 세월따라 대부분은 결혼행진곡을 밟게 될 것이다.그렇기는 해도 노처녀 직업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고(35세이상 독신녀는 85년 3만7천명에서 90년 7만6천명=통계청 발표),그런 딸을 둔 어버이 마음에는 그늘이 드리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수의 철인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결혼하라,후회할 것이다.결혼하지 말라,후회할 것이다.결혼하든 안하든 후회할 것이다』.약여하게 풍기는 비관론.오늘의 지각결혼 내지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이같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때문이라 할 수야 없겠다.여성의 경제적·사회적 능력향상 등 시대적 변화와 더 연관되고 있다하면 몰라도.

결혼에 후회만 따르는 건 물론 아니다.이승을 이어가야 할 섭리의 뜻이 또 결혼 아니던가.인간의 참모습은 결혼않은 위인보다는 결혼하며 사는 범인쪽에서 찾아지는 것 아닐지.<서울신문 논설위원>
1992-11-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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