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00호 「춤」 발행인 조동화씨(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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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0-20 00:00
입력 1992-10-20 00:00
『무용계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주력했습니다.순간예술인 무용공연의 의미와 가치를 기록과 평론을 통해 외부사회에 알리는 한편 외국의 무용정보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들에 치중해왔죠』
지난 10월호로 2백호를 맞게 된 월간무용전문지 「춤」지의 창간,발행인 조동화씨(70)
지난 76년 3월호를 시작으로 16년동안 단한번도 거르지 않고 책을 만들어온 그는 『2백호라는게 3백호,5백호로 가는 중간역일 뿐 큰 의미를 둔다는게 쑥스러워 특집호로 떠들썩한 꾸밈도 축하행사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이제까지 외국의 사조나 지식을 수입하는데 급급해왔다면 이제는 우리의 무용인,무용학술논문을 지면을 통해 외국에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할때라는 생각으로 2백호를 맞는 소감을 대신한다.
현재 「춤」지의 총부수는 1천6백부,이중 유가지는 4백부가량.동숭동의 20평이 넘는 2층집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편집장을 맡은 김경애씨(무용평론가)와 또 한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무용계의 협소성과 비생산성으로 전문지가 장사가 될 턱이 없죠.초기에는 선배등 여러사람들 후원으로 한호 한호 꾸려가기 바빴죠.지금은 문예진흥원에서 매달 주는 진흥기금 1백50만원도 있고 해서 사정이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크기만 한데 이는 「춤」지가 무용계에 미치는 역할이 단순한 기록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박용구씨를 위시해 채희완,김태원,김채현,김경애씨등 무용평론가들의 대부분이 「춤」지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 약대 재학시절 무용하는 여자들이 예뻐 보여서 「함귀봉무용연구소」에서 2년간 춤을 배우기도 했다』는 그는 고희의 나이에도 낭만과 웃음을 잃지 않는 만년소년이다.
지난 88년 중앙문화대상으로 받은 상금 7백만원으로 구입한 현재의 출판사이름을 거문고 하나에 벼루 열개란 뜻의 「일금십연재」를 줄인 「금연재」로 붙였다.
1992-10-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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