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선대위부위장 중진망라 실세화/대선정국 주도채비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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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0-17 00:00
입력 1992-10-17 00:00
◎민정계 전면 배치,지역별 분담/당운영도 공조직 위주로 전환

민자당은 박태준 최고위원의 탈당으로 인한 연쇄탈당사태가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17일 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하는 등 당을 선거체제로 전환키로 했다.

이는 연말 대선이 눈앞에 다가옴에 따라 본격적인 대선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필요성과 신당 추진 움직임과 관련한 당내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양면 포석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선거대책기구의 「얼굴」인 선대위원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한다는 방침아래 김영삼총재가 16일 직접 정원식 전총리와 교섭을 벌였으나 정전총리가 고사하는 등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로 한때 진통을 겪기도 했다.

○…민자당측이 선대위원장에 초중량급 외부인사를 영입키로 방침을 세웠던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탈당으로 변화된 정국상황에서 범여권 재결속을 위한 상징적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김총재측은 당초 당 위계상으로는 김종필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는 것이 순리임에도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소외감을 달래기 위해 박태준최고위원을 기용키로 결심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러나 박최고위원이 돌연 당을 떠난데 이어 조직장악력이 출중한 이춘구의원마저 고사함으로써 눈을 밖으로 돌려 외부에서 적임자를 찾게 된 것.이같은 상황에서 정원식·강영훈·신현확 전총리와 이원경 전외무장관(당후원회장)등이 일단 유력한 영입대상자로 압축.

이 가운데 강전총리의 경우 처음부터 고사 의지가 완강해 배제됐고,정전총리가 이북5도민 표밭을 효과적으로 일구는데 도움이 되는데다 무난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최우선 교섭대상자로 부각.

그러나 15일아침 김종필대표가 정전총리를 만나 수락을 요청한데 이어 16일상오 김총재가 직접 설득에 나섰으나 정전총리는 정중히 고사.이날 서울시내 모처에서 정전총리를 만나고 여의도 당사에 나온 김총재는 『세상일이라는 게 쉬운 일만 있겠느냐』며 어려움을 토로.

이에따라 노대통령의 탈당으로 다소 약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경북지역 지지기반을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신전총리와 이당후원회장의 기용 필요성도 제기.이같은 상황에서 김총재측은 최악의 경우 김대표를 대타로 내세운다는 배수진을 쳐놓고 이날 저녁 늦게까지 정 전총리에 대한 설득작업을 계속.

○…선대위원장­부위원장­선대본부장및 기능·직능·지역별 위원장이라는 계통조직 가운데 선대본부장은 김영구총장의 겸임이 유력시되고 부위원장 인선은 당초 5명선에서 민정계 중진실세들을 일선배치한다는 차원에서 김윤환·이춘구·정석모·최형우의원등 중진급을 망라해 대폭 늘리기로 결정.

이들 부위원장들에게는 지역별로 득표책임을 분담시킬 방침이며 특히 수도권의 중요성을 감안,서울을 강남·강북으로 나눠 투톱시스템으로 표밭관리를 하기로 결정.

박준병·김종호의원 등 여타 중진들이 맡게될 조직·홍보·유세 등 직능및 기능별 위원회는 자문기구로 둘지 아니면 명실상부한 집행기구 성격을 띠도록 할지에 대해서는 김총재의 최종 판단만 남은 상태.

○…김총재측은 이와함께 이동통신사태 이후 당내 갈등국면에서 민정계의원들이 강력하게 제기했던 김총재 주변의 일부 「측근」인사들의 「독선적 태도」를 시정하기위한 대책마련에도 고심.

김총재는 이같은 민정계중진들의 이의제기에 대해 이유가 있다고 판단,지난달 하순 당무회의에서 시정을 약속한데 이어 선대위구성을 계기로 당운영방식을 사조직이 아닌 공조직 중심으로 전환키로 방침을 굳혔다는 후문.<구본영기자>
1992-10-1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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