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교역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11)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2-09-02 00:00
입력 1992-09-02 00:00
◎토용·안압지 출토 쪽배로 모양 추측/평저선 형태… 돛·노 동시에 사용한듯

한중수교로 황해의 물살을 가르고 더많은 양국의 선박들이 오가게됐다.

신라초기 고구려·백제와 동반,중국과 외교관계를 갖던 신라는 국력이 신장된 진흥왕25년부터 중국에 단독사신을 파견했다.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고구려 백제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 외교와 국제무역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신라는 서둘러 해군을 창설하고 선부서를 만들어 선박건조와 해군병사 훈련을 했다.이에 고구려는 신라의 대당항로인 북방항로(서해안 덕적도에서 출발,고구려연안을 따라 중국을 왕래하던 코스)를 봉쇄했다.

신라는 중국과의 교역로가 막히자 새로 황해횡단로(덕물도∼산동반도 내주왕복)를 개척했다.이 뱃길로 상선뿐 아니라 신라의 승려들이 유학을 갔고 이슬람들과 교류도 시작됐다.약관 16세에 신라의 혜초도 황해횡단로를 통해 당에 갔으며,불교의 발원지를 순례한후 4년만에 당나라 장안에 들어갔다.혜초의 아라비아 순방은 한문화권에 속한 인물로는 처음 아라비아 현지견문록을 남긴 것으로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 중앙아시아에 관한 지식을 전달한 동서문화교류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신라와 이슬람과의 만남속에 아랍인들의 관심을 끈것은 신라의 풍부한 황금이었으며 신라의 연단술이 아랍에 전해졌을 가능성이다.신라의 금동불상과 범종은 신라의 금속공예가 매우 높은 수준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금속공예의 발달은 연금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역사적으로 연금술은 두가지의 화학기술로 구분되는데 첫째 동·납·주석·금·은등 금속제조기술이고,둘째는 불로장생의 선약제조술이다.중국을 비롯한 동양은 도가사상에 힘입어 진사와 황금을 배합하여 선약을 만드는 것을 연단술이라 하였다.

의학서 「신농본초」는 연단술과 약물학을 집대성한 것으로,여기에 인삼과 김설을 포함한 11종의 한국약재가 소개돼 있다.이 책에서 금가루인 김설은 독이 있어 정련치 않고 복용하면 죽지만 한국의 김설은 잘 정련되어 효험이 좋은 약이라고 기록,신라의 연단술 재료와 기술이 아랍상인들을 통해 아랍 여러나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신라와 당,신라와 이슬람의 만남에 이용되었던 배의 구조를 밝힐 자료는 없다.그러나 신라의 토용에 나타난 배의 모형과 안압지에서 발굴한 소형 쪽배를 토대로 황해바다를 횡단했을 배를 추측할 때 평저선에 범과 노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장학근 해군사관학교교수>
1992-09-02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