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깨뜨리는 여성/김재기 주택은행장(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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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7-24 00:00
입력 1992-07-24 00:00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은 아름답게 보인다.

가족을 위해 부드러운 손끝마다 정성을 가득 담아 음식을 준비하거나 열심히 집 안팎을 닦고 치우는 여성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콧등에 땀이 맺히도록 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릇을 깨뜨릴 때가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면 물론 그릇 깨질 염려가 없겠지만,일하다 보니 손에서 그릇이 미끄러져 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여성은 그릇도 깨뜨릴 염려가 없지만 많은 일을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뜻과 달리 그릇을 깨뜨리기도 하는데,문제는 그릇을 깨뜨리느냐 안 깨뜨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가까이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끔씩 본다.

정당한 절차와 필요한 조건을 갖춘 고객이 대출을 요청해 왔을 경우 그에 대한 대출이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이 대출에 관계되어 사후에 부도등의 일로 문제가 되었을 경우 담당 직원이 문책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일이 있곤 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중소기업을 위한 신용대출이 많아지는 때면 이러한 일도 더욱 많아지게 마련인데,재무구조가 다소 미흡한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아래 장차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뜻에서 실시되는 신용대출은 정당한 조건과 절차에 따라 대출을 했다면 차후에 대출여부를 놓고 지적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때때로 중소기업 자체의 문제로 인해 담당직원이 대출과 관련해서 문책을 당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대출당시의 절차나 자격에 문제가 없으면 재무구조나 부도등의 여부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일을 마무리하여 맡은 바 일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하려는 직원들의 노고를 살려 행여 그릇 깨뜨린 것만 가지고 나무라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물론 그릇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설사 그릇이 깨졌다 하더라도 그릇을 깬 것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땀흘려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땀방울은 가치있는것이다.

그릇을 깨뜨릴 것에 대한 질책이 있다면 아마도 걱정이 앞서 일을 미루거나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며 그릇 깨뜨릴까 두려워 일을 하지 못하는 여성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2-07-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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