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두가지 기능/이동하 문학평론가 서울시립대 교수(굄돌)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2-03-11 00:00
입력 1992-03-11 00:00
내가 「젊은 사자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것은 국민학교 6학년때였다.몬티라는 애칭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그해에 죽었기 때문에 그 영화가 「몬티 추모」라는 명분을 내걸고 재수입된 것을 보았는데,고독하고 섬세한 유태인 미군병사 노아로 출연한 몬티의 인상은 과연 강렬하였다.나는 노아가 동료들의 박해와 2차대전의 포화를 힘겹게 견뎌나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울었고,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이겨낸 그가 환하게 웃으며 아내에게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는 흡사 나 자신이 승리자가 된 양 기쁨에 들떴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후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어보고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노아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망한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에 소설과 그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는 경험을 자주 갖게 되면서 나는 그 정도의 내용바꾸기란 지극히 흔한 일임을 알게 되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최초의 발견이준 충격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충격의 기억이 예술의 두 가지 상반되는 기능이라는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적지않은 뜻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된다.원작소설의 결말이 독자를 삶의 부조리와 비극성이라는 문제에로 끌고가서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몬티가 출연했던 영화의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런 문제를 잠시나마 잊고 편히 쉴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들 양자는 예술의 긴 역사속에서 각자 그 나름으로 확고한 전통을 형성해오고 있는 터이다.그러면 진정한 예술은 이중 어느쪽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나로서는 어린시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느꼈던 기쁨의 기억에도 불구하고,전자쪽에 더 큰 무게를 둘수밖에 없다.예술에 있어서는 위안보다도 고통이 더 소중한 깨달음과 구원에의 안내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92-03-11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