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올해 주제/정치개혁 이룩하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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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1-25 00:00
입력 1992-01-25 00:00
◎정치 선진화를 위한 긴급제언/토론문화 가꿔야한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다수의 의사를 쫓는다든지,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매사를 결정한다든지 하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임은 누구나 잘 알고있다.민주주의는 자기와 이해관계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용과 이들과의 끊임 없는 대화를 기본으로 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물론 토론을 통하여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가능한 한도까지 마음을 열고,상대방의 의견을 듣고,남을 설득하려는 것만큼이나 남에게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오히려 기형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옛날 희랍사람들은 토론의 방식에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첫째는 「쟁론법」이라고 부르는 것인데,토론에 있어서 서로 상대방의 견해를 부정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은 틀리고 자기 자신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식인 것이다.두번째는 「변증법」이다.토론에 임하면서 각기 자기의 주장과 의견이 있지만 서로 상대방의 견해에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배우게 된다.따라서 토론을 통하여 당사자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의견들이 수정이 되고 종합되어서 그중 어느 것도 아닌 제3의 결론이 부상하게 되는 방식이다.이 토론의 방식이 우리가 「변증법」이라고 부르는 것의 시초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오늘날 변증법에 관하여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중에는 변증법의 기본정신은 잊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같다.

이 변증법적인 대화의 방식이야말로 민주주의적인 토론의 기본 원칙이다.어떤 문제에는 한가지 정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우선 어떤 특정한 문제를 어떻게 제기하는가 하는 것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어떤 문제는 일정한 답을 내거나 「교시」가 나옴으로써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또 어떤 것은 문제를 둘러싼 계속되는 대화의 과정에서 그 해답이 부상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문제를 애초에 없애버리는 것으로 좋은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고 제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이렇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와 계속되는 대화의 긴장과 두려움에서 민주정치의 활력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나오는 것이다.

처칠은 거의 전 생애를 하원에서 보냈다.그는 큰 공을 이룬 원로정객이 흔히 그러듯이 말년에 작위를 받고 은퇴하면서 상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밟지 않고 수상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일생을 하원에서 마쳤다.그의 정적들의 회상에 의하면 처칠은 그런 만큼 하원에서 토론에 익숙해 있었고 자질구레한 의사규칙까지 달통해 있어서 쉽게 논쟁에서 우위를 접하곤 했다고 한다.그런 처칠도 평생에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하원의 토론에 임하는 것이었다.그가 어떻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연설문을 준비하고 상대방의 질문과 비판에 대비하였는가에 관한 많은 일화가 남아 있다.공적인 토론은 겉치레 정도로 생각하고 부족주의적인 자기 패거리의 논리만을 쫓아 상대방을 패배시킬 생각만을 하고 있는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한 셈이다.
1992-01-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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