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타계한 원로 언론인 최석채옹의 아호는 몽향. 고향 그리워하는 마음이 나타난다. 그전의 아호는 무향. 「고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불교경전의 「남무…」에서 따온 것으로 「아…」라는 뜻을 갖는다는 것이 본인의 해설이었다. 눈을 감은 그는 금릉군 조마면 신안리 화순 최씨 6백년 세거지지 선영으로 간다. 『아! 고향,꿈의 고향』으로. ◆타향 땅인 대구의 식구들을 역시 타향 땅인 서울로 불러들인 해가 1960년의 크리스마스 날. 그가 영면한 지금은 응암동 2의 21번지 13평짜리 집 비슷한 집이었다. 그 부인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무슨 놈의 집이 문도 없어요. 부랴부랴 문을 달았는데 벽은 벽이 아니라 얼음이었죠』. 그걸 헐고 독립신문 기념상 상금으로 지은 게 지금의 집. 하지만 잠깐 기거한 곳이 아닌가. 그는 15일이면 영원한 「꿈의 고향」으로 간다. ◆그는 신념에 찬 정론에의 길을 걸어온 언론인. 서슬이 시퍼랬던 자유당 시절인 55년에 쓴 「학생을 도구로 이용 말라」는 제하의 대구매일 사설도 관의 횡포에 대한 직필의 계고장이었다. 이 글은 관료들의 아부 근성과 출세욕이 학생들을 길바닥에 늘어세워 현관들을 환영하게 한다고 나무랐던 것. 그로 해서 신문사는 테러를 당하고 주필이었던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그러나 그는 승리했고 막중한 언론의 위상을 내외에 과시하기에 이른다. ◆지식인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주장해온 언론인 몽향. 그들이 정치나 권력을 백안시하면서 고고하려고만 할 때 그 사회는 틀을 잡지 못하고 겉돈다고 그는 말한다. 지식인은 끊임없이 국민에게 정신적 영양소를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 학행일치의 주창자였다. 하지만 권좌에의 유혹만은 계속해서 뿌리쳐온 언론인. 언론인은 바른 글을 써서 경계하고 계도함으로써 사회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은 때문이었다. ◆신문인이 은퇴하면 남는 건 스크랩과 자존심뿐이라고 말했던 사람. 그 자존심이란 꿋꿋한 기개를 뜻함에 다름 아니다. 기개를 남기고 떠나는 언론인. 명복을 빈다.
1991-04-1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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