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명절」을 위하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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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27 00:00
입력 1990-09-27 00:00
추석은 참 좋은 명절이다. 그 좋은 명절이 지금 마치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5일 연휴라는 장기휴일의 한복판에 추석이 자리잡고 있고 전후에 걸친 하루 이틀을 연결하면 열흘은 「노는 날」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명절이 황금같은 연휴를 보너스로 지니고 찾아온다는 것은 기쁘고 반가운 일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이 절기는 「놀기에」보다는 「일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근로에 능률이 날 수 있고 머리가 맑아 사고를 깊이 할 수 있으며 효율높은 연구작업도 기대할 수 있고 창작예술의 열매도 많이 거둘 수 있는 계절이다. 그런 절기의 도막을 뚝 잘라서 연휴로 써버린다면 모처럼 돌기 시작하던 생산의 맥이 멈추게 된다.

게다가 휴가철에 빚어졌던 혼란과 추태가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벌어지는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자가용이란 자가용은 몽땅 길로 나와서 기름을 태워가며 대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우리는 지금 속으로 깊이 멍들어가는 경제난국의 상당한깊이까지 빠져들고 있다. 국제유가가 이미 심각할 만큼 올라 있고 그에 따른 석유산업 위기 등 속이 곪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흥청거리며 과소비를 하고 길에서 에너지를 태워 없애는 일을 명절을 핑계로 해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어리석은 일이 「황금연휴」 때문에 벌어질 게 뻔하다.

추석 명절이 아름답다는 것은 거기에 담긴 미풍양속의 철학성 때문이다. 조상에게 결실의 기쁨을 보고 드리고,자손이 모여 친목과 우애를 다지고,그리고 어렵고 힘든 이웃을 찾아 위로하고,송편 한 접시씩이라도 나눠 먹는 풍습이 이 고유한 명절과 더불어 이어져왔다.

뇌물성 선물로 사회질서를 흔들어놓고 사치스런 구매충동으로 정서적 격랑을 일으켜 불신과 증오의 골을 파고 갈등과 불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추석이 지닌 미덕의 기능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객지살이에 분망했던 자녀가 고향 어른들을 찾아뵙고 산소에 올라가 조상께 절하며 허겁지겁 살아온 일상을 반성해 보는 일,먼데 흐트러져 몇해가 지나도 만나보기 어려운 혈연들이 모처럼만나 정을 나누는 일,그런 일들이 명절에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그 무서운 수해로 너무 큰 피해를 입은 이웃이 많다. 추석연휴를 즐기기는커녕 명절을 한데서 보내거나 물 잠겼던 집에서 참담하게 당해야 하는 이웃들이 당장 이웃에 있다. 그들이 당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던 우리라고 생각해보며 따뜻한 정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복잡한 길에 차를 끌고나서는 어리석은 짓을 보태지 말고 되도록이면 객적은 돈쓰임새를 고치고,꼭 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집 떠나는 일 자체를 삼가는 것이 현명하고 유익한 일이다. 조상께 정갈하게 차례지내고 어려운 이웃에게 마음 나누고 북경서 전해오는 게임소식이나 즐기며 가족과 함께 온당하고 건강한 추석을 보내는 편이 훨씬 성숙한 선택이다. 자녀교육으로도 그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미리미리 가족과 더불어 계획도 세우고 합의도 하여 지내놓고 후회되지 않는 명절을 준비하는 현명함을 택하자.
1990-09-2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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