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성찬속 감춰진 「분단의 승리」/김영만 정치부기자(남북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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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06 00:00
입력 1990-09-06 00:00
◎「듣기좋은 소리」로 포장된 「기조연설」 공방전/「불신의 골」 깊이 패인 남북… 회담목표 멀기만

남북대화를 「구경」하다 보면 혼자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대화와 회담이 지향하는 목표에 열중해 있다가 양측 대표가 토해내는 말들에서 남북관계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혼자 놀라는 것이 그런 경우다. 어떤 때는 현실과 회담의 목표가 갖는 엄청난 괴리에 절망해버리는 수도 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총리회담장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를 경험하고 있다. 5일 공개로 진행된 1차회담에서 양측은 각각 기조연설을 통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준비해온 「회담목표」들을 풀어놓았다. 양측은 6일의 비공개회담에서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양측의 입장차이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남북관계의 현주소는 양측의 목표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강영훈총리가 기조연설을 통해 내놓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 초안은 남북간의 현재 상황을 극명하게 노출하고 있다. 『통일을 이룰 때까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며…』 『남과 북은 상대방을 중상하는 일체의 행동을 중지하며…』 『의견대립과 분쟁을 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상대방을 파괴ㆍ전복하려는 행위를 일체 하지 않는다』

우리측의 합의서 초안을 뒤집어 현재의 남과 북간의 관계를 재조립해보자. 그것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중상하며 의견대립과 분쟁을 대화 아닌 다른 수단으로 풀려 하거나 풀거라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또한 상대방을 파괴ㆍ전복하려고 하는 것이 남북간의 현실로 지적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전쟁상태에 있는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실제로 『미국 CIA의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공작 계획을 부시 미대통령이 승인했다』는 외신보도에서 나오는 전복이란 단어가 현재의 남북관계를 설명하는 데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강총리의 기조연설에서 남북관계의 현실이 포괄적이고 다소간은 관념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 비해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의기조연설은 좀더 직설적이다. 연총리는 『남북간에는 군사적으로 상대방이 자기를 먹으려 한다는 불신이 있다』면서 『북은 남측에서 미군과 함께 북침하려 하며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승공통일」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총리는 『우리는 공화국에서의 정치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정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위대한 주체사상과… 령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다져진 인민의 통일단결은 우리 공화국의 밝은 전도를 계속 담보할 것』이라고 불필요한 「자기자랑」을 했다. 이어 그는 어제의 도착성명에 이어 문익환목사ㆍ임수경양의 석방 등을 회담성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또하나의 「현실」을 우리측 대표단과 보도진에게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양측 총리의 기조연설은 전복기도,상호 불인정,비방,새로 나타난 회담의 전제조건 등이 회담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해준 셈이다.

회담의 목표로 설정된 표현들은 듣기만 해도 모두를 기분좋게 한다. 설악산∼금강산의남북 관광코스를 연결하고 우편물을 교환하며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는 일,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하고 여단급이상의 부대이동및 기동훈련을 45일전에 상대방에 통보하는 일등이 총리회담의 우리측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북측이 제시한 목표 역시 ▲사단급이상 군사연습 금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군사당국간 직통전화 설치 ▲3단계에 의한 군사력감축 등에서 보듯 정치ㆍ군사에 치우쳐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모두 듣기좋은 소리임에 틀림없다.

회담장에서 느끼는 현실과 회담목표의 엄청난 괴리는 우리 국민의 인내와 게으르지 않는 현실인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인내와 냉정한 현실인식이 오히려 남북대화를 옳은 방향으로 착실히 진전시키는 바탕이 될 것이고 그 바탕위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1990-09-0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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