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간판내린 민정당의 「영과 욕」
기자
수정 1990-02-02 00:00
입력 1990-02-02 00:00
○민주정의당이 1일 전당대회에서 민주·공화당과 합당을 결의, 9년 보름여에 걸친 영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민정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이면서도 5공과의 악연을 끊지 못해 집권중 해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과거 속으로 묻히고 있다.
당의 해체에 대해 민정당 관계자들은 「창당이념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발전적 해체」(최재욱의원)로 기록하고 싶어한다. 새로운 정치환경에 부응,안정ㆍ번영ㆍ통일의 창당이념을 영구적으로 구현키 위한 방법으로서 민주ㆍ공화당과의 합당을 설명하고 있다. 합당의 목적이 집권당내의 정권교체를 담보하기 위한 장치마련에 있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이런 해석도 민정당 해체의 한 단면을 설명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자력으로 정권을 재창출한 자부심과 10년 집권의 기득권을 조건없이 포기하고 당기를 내린 것은 당의 해체를 과거청산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
민정당은 12ㆍ12와 5ㆍ17에 의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정치전위대로 탄생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정치적 자살」을 강요당한 셈이다. 「신군부」가 정권장악 과정에서 저질렀던 비도덕적 행위들은 민정당의 원죄로 치부되고 있다. 비록 5공ㆍ6공의 두 공화국을 탄생시킨 모태로 권력의 핵심들과 영욕을 함께 했지만 그 원죄로 인해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질시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민정당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다 할 것이다.
전임총재였던 전두환전대통령을 국회증언대에 세우고 정호용의원을 사퇴시킨 것은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민정당의 자구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희생양의 제공에도 국민적 인식은 민정당의 거듭나기를 부인함으로써 그 자신을 끝내는 청산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정당의 해체가 집권세력내 파워게임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보는 접근방법도 음미할 만하다. 노태우대통령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진기존중간보스들과 박철언정무1장관과의 파워게임에서 조기당해체론자인 박장관의 승리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5공과 6공을 탄생시킨 민정당이 새 정당에 통합됨으로써 민정당 창당세력ㆍ5공세력ㆍ6공출범 주역들의 무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를 바꿔 말하면 새 집권당 내부에 무대를 가진 유일한 민정세력은 통합신당창당의 주역인 박장관밖에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민정당의 조건없는 해체를 집권세력내 파워게임과 무관치 않게 보는 이유가 여기서 찾아지고 있다.
민정당의 짧지 않은 역사에 대해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다. 다만 민정당집권 9년 보름은 정치ㆍ사회적으로 는 「암」의 시대로,경제ㆍ외교적으로는 「명」의 시대로 구분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민정당의 집권기간 동안 정치ㆍ사회는 「어두웠던 기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록 6ㆍ29 이후 민주개혁이 잇따랐지만 이는 민정당의 자발적인 개혁이라기보다는 국민의 힘에 의한 강요된 개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5공화국 기간은 유신보다 더한 정치적 암흑기로 기록되고 있고 민정당은 「정치 실종기」의 주연도 아닌 조연으로 일관했다. 정치의 중심은 당이 아닌 청와대와 국가안전기획부에 있었으며 이 점은 민정당이 끝내 국민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출범 당시 개혁주도세력의 핵심들이 모두 청와대나 군에 포진하고 당은 비핵심들에 의해 위탁관리되고 있었던 데서 이 점은 분명해진다.
스스로 정권을 재창출한 6공화국은 민정당에게 그나마 「영」의 세월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고단한 자기와의 싸움으로 일관했을 뿐 민정당 자신의 시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민정당정권은 경제와 외교면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외채왕국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위상을 바꾸었고 물가를 잡는 데 성공했다. 경제에 관한한 공화당정권에 뒤지지 않는 공을 남겼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민정당정권이 올림픽을 유치하고 이를 세계적인 잔치로 꾸민 것은 한국을 「세계속의 한국」으로 끌어올린 하나의 상징적사건이었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토대로 외교적 노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사의 한 주역으로 자리를 바꿀 수 있었다.
민정당이 정권을 재창출했다는 점은 비록 창출된 정권의 집권도구로 출발했다는 탄생의 부자연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당사에 기록되어야 할 새로운 경험임에 틀림없다.
민정당 집권의 공과에 대해 과가 공보다 강조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누적된 과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을 해체했을 만큼 민정당 스스로도 과가 공보다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민정당에 대한 현재의 부정적 평가 대신 공이 강조되는 상황이 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던 민정당의 해체로 집권세력은 과거로부터 한결 자유로와지게 됐다. 또한 민정당의 해체를 통해 집권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 채무를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있게 됐다. 전두환전대통령등 5공세력에 대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민정당의 9년여가 과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뚜렷한 역사의 한 장으로 남을 것인지는 「민주자유당」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김영만기자〉
◎전당대회 이모저모/지도부의 설득 주효… 상정 7분만에 만장일치
○…민주ㆍ공화당과의 합당결의를 위해 1일 하오 2시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민정당의 마지막 전당대회인 6차 임시전당대회는 합당결의에 대한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가운데 당초 예상보다 5분이 빠른 65분만에 종료.
전체 대의원 9천72명중 8천76명이 참석한 이날 전당대회는 민정당이 창당 9년 보름만에 사실상 해체된다는 측면에서 다소 비감한 분위기가 감돌 것으로 예상됐으나 「민정당의 발전적 해체」라는 당지도부의 잇따른 설득이 주효한 탓인지 수시로 박수가 터지는 가운데 만장일치로 통합결의를 가결.
○…이날 하오 2시3분 박태준대표를 비롯한 고문ㆍ당직자들의 대회장 입장에 이어 박대표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전당대회는 윤길중고문을 전당대회 의장으로 선출하는등 일사천리로 진행.
당무보고에 나선 박준병사무총장은 민정당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합당결의의 배경과 필연성을 설명한 뒤 『노태우총재의 결단은 시대적 요청과 국민적 여망에 따른 것』이라며 이해와 협조를 요청.
이어 이날 전당대회의 유일한 안건인 「합당에 관한 건」이 하오 2시25분 상정되자 남재희중앙위의장은 제안설명을 통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을 통한 새 정당 창당 ▲합당의 절차ㆍ시기ㆍ방법 등의 중집위 위임 등 2개항을 설명하면서 자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협조해달라』 말로 대신.
그러자 윤의장은 15인 민정당창당준비위원의 일인으로 느끼는 소감을 피력하면서 남의장의 제안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 것을 요청,『이의 없습니다』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안건상정 7분만에 만장일치로 가결.
○…합당결의가 가결된 뒤 당총재인 노대통령은 박대표가 대독한 치사를 통해 3당합당의 불가피성과 합당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개혁하는 세력만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며 자세의 전환을 촉구.〈우득정기자〉
1990-02-02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