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인 그는 11년 전 미국에서 건너와 가창력 하나로 지금에 이르렀다. 내년이면 벌써 10년차.
그러나 그는 아직도 직업 음악인인 게 고맙다고 했다.“옛날에는 내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말도 잘 모르는 신인이었죠. 모든 게 불편하고 낯설고 답답했어요. 그렇게 어설프게 음악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편해졌다는 게 늘 믿어지지 않아요.”
●1집 분위기 다시 한번
그는 지난 3년간 학교를 휴학하고 일본과 국내를 오가며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정규 앨범과 싱글 등 8장의 음반을 냈다.
일본과 국내 가요계의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우리나라는 가수들의 활동이 TV방송에 고정되는데 일본은 라디오 방송의 콘서트나 초대석, 페스티벌이 굉장히 많아요. 보사노바, 헤비메탈 같은 소수 장르에도 골수팬이 항상 있으니 기분 좋게 음악을 할 수 있죠. 우리는 되는 것만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죠. 중간이 없잖아요.”
●언젠가 꼭 영어앨범도…
웬만한 팝가수를 능가하는 보컬 실력에 빼어난 영어 실력, 아이비리그 학생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있어 미국 진출을 권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가요를 포기 안 해도 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미국에서 음악하면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영어로 쓴 곡이 많아 언젠가 영어 앨범은 낼 예정이다. 그곳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상관없다.
가수들의 콘서트가 빼곡히 들어찬 연말. 올해도 박정현 공연은 이어진다.27∼31일까지 1차 콘서트, 내년 3월 LG아트센터에서 2차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 새 앨범 활동의 시작이다.“시장이 좋든 나쁘든 정규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20년이 지나도 남는 게 앨범이니까 제겐 앨범 내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영 안 팔리더라도 할머니돼서 손자한테 자랑할 수 있잖아요.” 자분자분 말하던 그가 느닷없이 할머니 목소리를 터뜨렸다.“네 할머니가 옛날에 가수였단다∼.”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2007-12-17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