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깬 패션계 훌리건
김성호 기자
수정 2019-03-01 03:32
입력 2019-02-28 17:26
英 최고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영광 이면의 삶을 재조망한 평전
을유문화사 제공
택시 운전사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맥퀸. 초등학생 때부터 디자이너로 살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런던의 유명 양복점 앤더슨 & 셰퍼드에서 견습생으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27세에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2001년 구찌그룹이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더 맥퀸 브랜드의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널리 떨치기 시작했다. 푸마, 샘소나이트, 시바스리갈 등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했고 30세가 될 때까지 그의 브랜드는 무려 세계 25개 도시에 진출했다.
을유문화사 제공
작품만큼이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았던 맥퀸. 그의 패션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하다. 그러면서도 빼놓지 않은 메시지는 인간의 존엄성이었다고 한다. 그 불변의 메시지는 어릴 적 누나에게 폭행을 일삼고 자신에게도 성폭행을 저지른 매형의 트라우마에서 생겨난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대학 졸업 작품은 그 첫 발현으로 평가된다. ‘희생자들을 좇는 살인마 잭’이라는 졸업 의상에서 맥퀸은 옷 안감에 머리카락을 붙이고 피 흘리듯 붉은 물을 들였다. 그를 스타 디자이너로 만든 ‘하이랜드 레이프’ 컬렉션(1994년)에선 모델들이 마치 성폭행을 당한 듯 찢긴 옷을 입고 등장한다.
“이제 관두고 싶어. 롤러코스터를 멈춰. 내리고 싶어. 패션 시스템 전체가 나와 대적하는 느낌이야.” 죽기 전 마지막 컬렉션을 앞둔 맥퀸의 말이다. 자신의 작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후원자이자 친구인 이사벨라 블로와 어머니의 잇따른 죽음, 그 이후 얻은 우울증과 마약 중독…. 많은 이들은 맥퀸의 죽음을 놓고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맥퀸이 오른팔 위에 새기고 살았다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속 헬레나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사랑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헬레나는 사랑이 추악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겉모습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인식이 사랑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맥퀸도 똑같이 생각했다. 게다가 이 믿음은 맥퀸의 창조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9-03-01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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