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해가 질 때는 집 생각은 끝없이 나고 있다. 나는 폭격을 세 번 겪고 죽을 뻔하다 살아났으나 지금도 밤낮없이 비행기는 상공에 떠돌고 있다. 그래도 인민군대로 나간 오라바님 생각을 해서 마지막 피 한방울이라도 아끼지 않고 싸우겠다.(중략) 나는 이만 하고 너는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여라. 이만 끝.” (267-269쪽)
하고 싶은 말은 넘치지만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이만 끝.’을 눌러쓴 누나의 마음이 애잔하다.
소식을 전할 길은 오직 종이에 몇 자 적어 보내는 것뿐이던 당시 각기 다른 사연들은 남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를 오갔다.
편지를 통해 입대한 아들은 자식 셋을 군에 보낸 어머니를 위로해달라고 동네 형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한 인민군 병사는 발싸개를 사서 빨리 면회오라며 아버지에게 떼쓰기도 한다.
저자는 이 편지들을 “헝클어졌던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보여주는 1차 사료”이자 “전쟁문학”이라고 평한다.
딱딱한 역사서가 흉내 낼 수 없는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한 시대의 증언이라는 것.
그러나 이 자료는 현재 미국 정부의 소유물로 되어 있다.
저자는 편지의 원저작자인 글쓴이인 발신자나 편지 수신인을 찾으면 소유가 반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봉투에 나온 몇몇 주소지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보고 편지의 주인이 나타난다면, 그래서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이 편지 묶음의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삼인. 348쪽. 1만5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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