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낭만주의 시선으로 본 과거
윤창수 기자
수정 2007-01-31 00:00
입력 2007-01-31 00:00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서 유럽 작가 6명 작품 전시
미술관에 들어서면 500년이 된 올리브 나무 너머로 종이눈이 쏟아져 내린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을 대표할 우고 론디노네(43)의 작품이다.4개의 작품이 모여 환상적이면서도 어딘지 쓸쓸하고 황량한 겨울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가 한스 옵드 벡(38)의 작품 ‘테이블’은 성인 남성 키만한 높이의 8m 길이 식탁이다.
디저트와 담배가 수북이 쌓인 식탁을 구경하는 순간, 우리는 대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2∼3살짜리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게 된다.
데이비드 렝글리(33·스위스)는 재활용품인 모든 사물을 까맣게 칠해 검은 방을 만들었다. 이 방 한가운데 뿌려진 노란 톱밥은 마치 강한 조명이 방을 비추는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이탈리아 출신 모니카 본비니치(42)의 ‘눈먼 샷’은 신랄한 은유다.
공중에 매달린 드릴이 정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발작처럼 움직일 때면 경기가 날 듯하다. 드릴 밑에 있는 것은 가죽벨트로 만든 침대. 성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은유 방식이 너무나 직접적이라 오히려 허무하기까지 하다.
본비니치는 2005년 베니스 비에날레에서 메인 로비를 장식한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6명의 유럽 작가가 9점의 작품을 내놓은 이번 전시회를 주관한 독립 큐레이터 밀로반 화로나토(38)는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유럽인의 특징”이라며 “흘러간 팝송 제목과도 같은 ‘우리의 마법같은 시간’이란 전시회 제목은 우울한 낭만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세계 미술계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현대 미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표현해 복잡하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의 현대 미술은 이에 비해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한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천안 버스터미널과 야우리 백화점 등의 소유자인 김창일(56) 회장이 운영하는 아라리오 갤러리는 천안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갤러리 외부와 영화관에도 어딘지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대형 설치미술이 가득하다. 천안에 들르면 고소한 호두과자를 맛 보면서 시각적 대비가 뚜렷한 유럽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천안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07-01-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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