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노출사건 그후 1년… 인디밴드 ‘럭스’ 기지개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6-07-25 00:00
입력 2006-07-25 00:00
어차피 변한 건 없어 그 누구도 상관 않겠지 그래도 나 여기서 멈출 순 없어 나의 길을 열어가겠어 나 이렇게 이 땅에 선 채 또 다른 오늘과 싸워 이기겠어 지치지 않아 지금도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이렇게 우리 함께 하는데 이렇게 같이 걸어왔는데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난 절대 변치 않겠어

-지금부터 끝까지(럭스)

이미지 확대
인디밴드 ‘럭스’ 리더 원종희
인디밴드 ‘럭스’ 리더 원종희
펑크 뮤지션은 가볍고, 장난스럽기만 한 것일까. 함께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를 진지하고, 차분하면서 이성적이라고 평가한다. 예술적 감수성이 짙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난 20일 만나보니 수줍고, 여리다는 말을 보태고 싶어졌다. 펑크 밴드 럭스(Rux)의 리더 원종희(26)의 이야기다. 럭스라는 말에 지난해 7월 말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게다. 사상 초유의 생방송 노출 사고가 세상을 흔들었다. 럭스가 직접 ‘벗은’ 건 아니지만, 이들을 포함해 인디 문화 전체가 싸잡아 손가락질 당했다.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원종희는, 럭스를 피해자로 여기지 않았다.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책임을 절감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존경하는 선후배, 동료와 럭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다고 돌이켰다. 듀스를 좋아하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권유로 밴드를 시작했다. 처음 함께 했던 동료들은 떠났지만 그는 만 10년이 넘는 한국 펑크 역사와 함께 자라났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순식간에 앨범 작업을 하고 갈 정도로 음악에 빠져들었다. 크라잉 넛이나 노브레인처럼 처음부터 도드라진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작업을 거쳐 2004년 여름에야 ‘우린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대로 된 음반을 냈다. 사회 비판과 철학적인 메시지에, 꾸밈 없는 펑크 사운드를 담으며 인디신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 평론가는 작사·작곡을 도맡은 원종희를 2000년대 송라이터로 추켜세웠다. 정작 자신은 거창한 평가라며 손을 내젓는다. 그런 이야기가 힘이 되지만 막막한 점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곡을 만들고, 가사를 써야 할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음악은 자신에게 ‘훈장’이 아닌 게임 같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펑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약자, 가난하고 없는 자 편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동료 밴드를 위해 힘내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 두 사람 앞이라도 사명감 있게 음악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낮엔 일하고, 밤에 연주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낮은 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떡볶이집 아주머니나 청소부 아저씨나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있기에 사회가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바로 이들에게서 자부심을 끌어내고자 하는 게 원종희의 소박한 바람이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3년여 머물렀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얼굴 색깔이 다르다고, 영어가 서투르다고 무시당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났다.

우리를 둘러싼 모순을, 억압을 싸워서 깨고 싶었다. 그는 펑크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30대 초반 부부가 끝까지 라이브를 지켜보고 사인을 요청했던 지난해 단독 공연을 기억한다. 중년 아저씨가 우연히 펑크 클럽 스컹크 헬에 들러 공연을 즐기고 갔던 때를 기억한다.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 덮어놓고 말하지 않는 심정을 주변에서 이해해 주기만 바랐으나, 이젠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이다. 굳이 애써 감추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고 눈을 빛냈다.

럭스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새달 5일 홍대 인근 롤링홀에서 결성 이후 두 번째 단독 공연을 갖는다. 일주일 뒤 일본으로 건너가 빅럼블 무대에서 일본 노장 로커빌리 밴드들과 어우러져 조선 펑크를 선사한다.9월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등 큼직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음악이) 죽을 때까지 보람 있고 재미있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06-07-25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