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까지 쏙 빼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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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기자
수정 2006-04-17 00:00
입력 2006-04-17 00:00
집주인의 너털웃음 소리가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집안 가득 부서져 내린다. 창밖은 온통 매화 천지. 백, 청, 홍매가 어우러진 풍광은 방안 가득 꽃그림자를 드리우며 누운 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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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재 화백
허달재 화백
광주 무등산 자락 춘설헌(春雪軒)을 찾은 기자를 집주인 직헌(直軒) 허달재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맞았다. 직헌은 현대 남화를 완성한 의재 허백련 선생의 장손이자, 그의 남화를 이어받아 현대화한 ‘신남화’풍 작업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뚜렷한 거처 없이 떠도시던 할아버지께서 50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전 할아버지 발치에서 서예를 배웠고요. 손님들이 워낙 많이 찾아와 세 칸짜리 집이 항상 북적였습니다.”

직헌은 의재를 사사했으면서도 미술대학에서 현대 미술사조를 배웠고, 이는 현재 그가 독자적 화풍을 일구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가(大家) 밑에 대가 없다.’는 고언(苦言)이 마음에 짐이 되다 보니 한때 늘 거기서 벗어나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했다. 허나 이젠 그마저도 체화함으로써 좀 편안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남화풍을 전수한 직헌은 90년대 중반 이후 화풍에 큰 변화를 준다. 먹과 물감이 흘러내리는 추상적 배경에 새와 달, 오리나 인간형태 같은 상형 그림을 주로 그렸다. 또 ‘매’(梅),‘난’(蘭) 등 글자와 그림을 조합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등 실험성 짙은 작업을 시도했다.

이들은 선화(禪畵)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데, 직헌은 “현실보다는 내재적 사의(寫意)로 미의 무한함을 순간적인 삶과 결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이같은 시도는 전통적 동양화 평가에 인색한 파리나 뉴욕 등지의 전시로 이어졌고, 호평을 받았다.

25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허달재’전은 이같은 신남화풍의 진수들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엔 특히 지난해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았던 작품들이 많다. 대작인 ‘포도’와 ‘홍매’ 그림을 비롯해 사군자에 포도와 연화를 포함한 병풍그림, 잔 글자의 반복을 통해 조형을 이룬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사선 구도의 ‘홍매’나 둥근 여백을 남긴 ‘포도’는 여전히 직헌의 인기품목답게 세련된 화면운영을 보여준다. 즐겨 그리던 소재 ‘죽림초옥’에 구현된 고요한 대밭 바람의 분위기도 직헌다운 화풍이다. 특히 ‘雪’이나 ‘茶’ 등의 글자를 달항아리와 조합시킨 작품들은 소탈하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직헌은 1년 중 3분의1만 이곳 춘설헌에서 머문다. 성남 분당에 집이 있다 보니 가까운 서울 염곡동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매화 만발한 춘설헌과 아파트 빽빽한 염곡동을 오가며 그는 몸안에 내재된 ‘전통’과 ‘현대’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02)549-7574.

광주 무등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6-04-1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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