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치솟는 공연 티켓값
수정 2004-12-21 07:37
입력 2004-12-21 00:00
#대형무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
뮤지컬 시장에서 현재 가장 비싼 관람료를 지불해야 하는 무대는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VIP석이 12만원이다. 평일 30%, 주말 20%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4인 가족이 VIP석에 앉아 공연을 보려면 주말 기준으로 4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여기다 저녁까지 먹는다면 가족 나들이에 50만원은 우습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할 액수다.
라이선스로 제작돼 23일 첫 공연되는 디즈니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는 VIP석이 9만원, 앙코르 공연에 들어가는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도 R석이 9만원이다. 내년 2월 첫 테이프를 끊는 브로드웨이산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VIP석이 14만원으로 책정됐다.
지금까지 공연된 뮤지컬 중 최고가는 2001년 막 올렸던 ‘오페라의 유령’(VIP석 15만원). 그런데 내년 2월 한국에 상륙하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이 기록을 또 깼다. 공연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중앙에 60석 한정으로 자리를 마련,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25만원짜리 VIP 패키지를 내놓은 것. 수입사인 아트 인 모션의 정일국 대표는 “오페라층을 뮤지컬로 끌어들이자는 취지”라며 “현재 기업들이나 외국 대사관 등을 중심으로 예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티켓값을 단순비교하자면 무대규모가 큰 오페라 쪽은 훨씬 더 고가이다. 국내 공연 역사상 최대 무대규모를 기록하며 지난해 선보였던 야외오페라 ‘투란도트’가 최고가인 50만원(VIP석). 자존심 경쟁을 하듯 이후 오페라 무대들의 티켓값이 폭발적으로 뛰어올랐다는 건 공연계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난 5월 공연된 야외오페라 ‘카르멘’. 세계 최정상급 테너 호세 쿠라를 영입해 그라운드석 전체를 30만원짜리 R석과 20만원짜리 S석으로 몽땅 채웠다. 지난 7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올린 오페라 ‘리골레토’도 사정은 마찬가지.R석이 30만원,S석이 24만원이었다.
#100억 훌쩍 넘는 제작비
이처럼 티켓 가격이 치솟는 이유는 제작비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12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었고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 ‘맘마미아’도 100억원이나 들었다. 티켓 가격은 좌석수와 제작비에 따라 결정된다. 공연 횟수가 짧다 보니 한 회 벌어들일 수 있는 입장료 수입은 제한적이다.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공연기획사로서는 티켓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인 셈이다.
고액 티켓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서민들이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A,B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적 바리톤 레오 누치와 소프라노 조수미가 주연해 화제였던 오페라 ‘리골레토’의 경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개층의 총 3000여석 가운데 2000여석이 R석과 S석으로 도배했다. 무리하게 ‘고가 마케팅’을 구사한 이 공연은 유료관객으로 본전을 뽑는 데 끝내 실패한 사례다.
#식지 않는 ‘명품 마케팅’
그러나 ‘럭셔리 마케팅’이 자주 효력을 발생하는 것도 현실이다. 내년 5월 재공연을 앞두고 지난 6일부터 입장권 예매에 들어간 오페라 ‘투란도트’. 경기침체가 극심해도 ‘지갑을 열 VIP 고객은 따로 있다.’는 공연기획자들의 기대심리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고 있는 사례다.
투란도트 추진사무국은 두고두고 기념품으로 남길 수 있도록 금은 도금한 금속 바(Bar)에 레이저로 좌석을 새겨 넣는 ‘상품권 티켓’을 고안했는데,‘대박’을 터뜨린 것. 공연사의 한 관계자는 “예매를 시작한 지 불과 열흘여 만에 총 제작비의 13%에 해당하는 6억원어치를 팔았다.”며 흥분했다. 야외에서 실내(세종문화회관)로 무대를 옮기는 덕분에 지난해에 비해 대폭 인하했다는 입장권 값이 30만원(VIP석),25만원(R석).“의외로 VIP·R석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매진되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VIP 고객 선물용으로 기업체들이 무더기로 표를 사가는 덕도 있지만, 아무리 비싸도 볼 사람은 보게 돼 있음을 입증한 셈.
#제살깎기 해외스타 모시기는 ‘이제 그만’
그렇다면 공연가격의 대중화는 요원할까. 뮤지컬·오페라 전용극장 설립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공연계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뮤지컬의 경우 공연에 알맞는 1000석 이상 좌석을 갖춘 극장이 여러 곳 생겨야 가격면에서도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
해외스타를 앞다퉈 영입하려고 몸값을 천정부지로 부풀리는 업계의 제살 깎아 먹기 경쟁도 큰 문제점. 오페라 ‘카르멘’으로 내한했던 호세 쿠라의 개런티가 무려 8억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가된 셈이다. 한강오페라단의 양승현 공연기획팀장은 “수입공연의 안이한 발상에서 벗어나 국내 배우들을 스타로 키우고, 대형무대의 제작 노하우를 국내 기획사들이 스스로 확보하는 게 ‘티켓가격 현실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발레 ‘심청’공연 때 세종문화회관 3·4층 객석 전체를 1만원 저가정책을 구사해 성공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임소영 부장도 “고가의 티켓으로만 수익을 맞추려하지 말고 기업 협찬이나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관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내년부터 자체기획한 공연의 입장료를 20% 낮춰 ‘티켓 거품’을 빼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효과가 당장 공연계 전반으로 파급될 것 같진 않다는 게 공연계의 전망이다. 오히려 새해 초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내한공연이 시작돼 블록버스터급 대작들이 속속 무대에 올려질 계획이다.
황수정 이순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4-12-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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