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천양희등 5명 ‘문학적 정체성’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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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2-09 00:00
입력 2004-12-09 00:00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

현역 시인 5명이 스스로의 문학적 정체성을 솔직담백하게 발언했다. 최근 나온 대산문화 겨울호는 신경림 천양희 김혜순 장석남 이원 등 연령대와 성향이 다양한 시인들의 ‘시론’(詩論)을 기획특집으로 담았다.

“시는 그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 충실했던 신경림(68)시인에게도 깊은 좌절은 있었다. 민요적 정서를 녹인 시를 썼던 80년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한 시인은 “최근 나무를 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면서 “그 나무는 오늘의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심은 나무요 키워낸 나무일 때 그것이 주는 기쁨도 진정한 기쁨이 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시인된 지 올해로 40년이 됐지만 시를 못쓰고 산 동안은 살고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는 천양희(62)시인은 또 어떤가.“시업과 사업을 혼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즈음 ‘시 멀미’가 날 때도 있다.”는 그는 시가 풀리지 않을 때면 그만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새벽시장에 가서 꼬박 12시간 넘게 자지 않는 사람들을 보거나,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풍경을 두들겨대는 시인의 몸부림을 상상해 보라.

장석남(39)시인은 ‘시가 나를 이만하게 지켜주었다.’고 했던 스승의 말을 잊지 않고 위안삼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부재하나 익명적으로 있는 것을 지금 여기 내 앞에서 보려고 시를 쓴다.”는 김혜순(49)시인, 대학 2학년때 기형도의 시 ‘위험한 가계 1969’를 읽고 숨겨둔 자신의 가족사를 시로 밝히면서 비로소 시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원(36)시인.

시가 탕탕 큰 소리를 치기엔 너무나 곤고해져 버린 시대. 시인들의 몸부림은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도 추레하거나 남루해지지는 않았다.



짧은 5편의 글들이, 시의 미래에 지레 겁먹은 문학도들에게 나침반이 돼줄 듯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4-12-0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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