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 “수채화 같은 시나리오에 반해서…”
수정 2004-09-03 00:00
입력 2004-09-03 00:00
●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는 처음”
“서울에서 촬영현장까지 왕복 10시간이나 걸리지만 내려오는 게 정말 즐거워요.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는 처음입니다.”
경상북도 예천군.초가을의 넉넉함을 보듬은 논이 시야를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한 낡은 주막.그곳에 길 떠난 지 하루가 지난 어머니를 격려하기 위해 온가족이 모였다.“소리 한 자락 혀봐라.” 할머니(고두심)가 한마디 하자 손녀는 제법 판소리를 맛나게 불러제낀다.손녀 역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오나라’를 불렀던 백보현양.그 주위에서 모두들 화사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정말 가족 같다.“가족이란 것을 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라는 그녀의 설명이 도화지에 퍼진 물감처럼 은은하게 스며든 촬영현장이었다.
● 물에 빠지고 또 빠지고…나이 잊은 열정
다음 촬영지는 드라마 ‘가을동화’를 촬영한 곳으로도 잘 알려진 회룡포의 한 개울가.목포에 다다르기 직전 마지막 고비인 강가를 건너는 장면이다.강물이 불어 다리는 유실된 상태.구부정하게 지팡이를 짚고 큰아들(손병호)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다.
큰아들이 “별로 안 깊네요.”라며 먼저 들어가지만 물살에 밀려 빠지고 아들을 구하러 그녀 역시 ‘첨벙’.곧 허우적대는데 몸동작이 둔한 아들 탓에 NG다.“아니 어머니만 폭삭 젖으면 어떡해.”(감독) 바로 인정사정 안 봐주고 큰아들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는 그녀.촬영현장엔 웃음이 번진다.
실제로는 엉덩이까지 올라오는 깊이지만 그녀는 OK사인이 날 때까지 몇 번이고 물 안에서 손을 흔들고 머리를 들었다 뺐다 하며 물에 빠진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했다.연기를 하는 데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한 듯.나이를 잊은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랑하다 죽는 역할 한 번 해봤으면”
“섬사람 기질인 것 같아요.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강인해질 수밖에 없죠.”
32년 동안 연기를 했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역할이 남아 있을까.“사랑하다 죽는 역할을 못해봤어요.감독들이 눈이 멀었지, 왜 나를 멜로의 주인공으로 안 뽑는지 몰라.아직도 희망을 버리진 않았어요.” 촬영이 끝난 뒤 검은 날개의 잠자리를 발견하고는 물에서 나갈 생각을 않고 “너무 예쁘다.”며 지켜보는 그녀.왜 멜로의 주인공이 안 됐을까 싶을 정도로 그 표정엔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설레고도 수줍은 듯한 미소가 살아있다.
‘먼 길’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의 구성주 감독이 7년 만에 내놓는 작품.TV에서 방영된 한 어지럼증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감독이 직접 해남에서 목포까지 3박4일을 걸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두심은 “수채화 같은 느낌의 대본에 반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파이란’의 손병호,‘강원도의 힘’의 김유석,‘동승’의 김예령,‘코르셋’의 이혜은,‘범죄의 재구성’의 박원상 등 연기파 배우들이 극중 자식들로 출연한다.6월에 크랭크인해서 곧 촬영을 마치고 11월 개봉할 예정이다.
예천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2004-09-03 3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