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축구장 난투극 74명 사망… ‘고개 드는 군부’
수정 2012-02-03 00:00
입력 2012-02-03 00:00
사건은 지중해 연안 도시 포트사이드에서 일어났다. 포트사이드 홈팀인 알 마스리가 이집트 최강팀이자 카이로가 연고지인 알 아흘리를 상대로 3-1로 이긴 직후 홈팀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해 원정팀 응원단과 선수 등을 공격했다. 둔기를 휘두르거나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달아나던 관중이 좁은 출구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인명 피해가 늘었다. 경기장 일각에선 방화도 발생했다.
양팀은 오랜 라이벌 관계로, 특히 알 아흘리의 팬들은 과격한 성향으로 악명 높다. 이날도 알 아흘리의 팬이 홈팀 응원단을 모욕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긴장이 고조됐고,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흥분한 알 마스리의 팬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나오면서 사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알 아흘리 소속 선수 아부 트리카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축구경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성토했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 병력은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 민주화 시위를 겪은 이후 이집트 경찰은 통제력을 잃고,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치안 공백을 초래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기동 경찰이 현장에 있었지만 개입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면서 “무바라크 치하에서 받은 잔인한 진압 방식 말고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군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군사위원회 최고사령관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사건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이집트의 불안을 꾀하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검찰은 즉시 수사에 나섰고, 의회도 임시회의를 소집했다. 이집트 축구협회는 리그 경기를 무기한 중단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2-02-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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