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원더우먼과 유엔/박홍기 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수정 2016-10-24 22:39
입력 2016-10-24 22:38
원더우먼은 만화가, 작가가 아닌 심리학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1893~1947) 박사에 의해 탄생했다. 마스턴 박사는 1944년 아메리칸 스칼러 학회지에 “슈퍼맨처럼 강인한 초능력과 여성의 선량한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여성을 진정으로 해방시킬 수 있다”고 구상 배경을 썼다. 원더우먼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당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헤라클레스의 힘, 아테나의 지혜, 아프로디테의 미를 갖춘 강인한 여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으로는 섹시 아이콘으로도 인식됐다.
원더우먼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 나타났다. 유엔 여권 신장 명예대사 임명장을 수여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유엔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양성평등, 사회 진출, 잠재력 개발 등 여성을 위한 메시지를 홍보할 때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전에도 1998년 곰돌이 푸가 우정 증진을 위해, 2009년 팅커벨이 환경을 위해, 지난해 앵그리버드가 물·에너지를 위해 유엔 명예대사로 임명된 적이 있다.
유엔 직원들이 원더우먼의 명예대사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양성평등이나 여성 주권을 위한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직원 50여명은 행사 때 무대를 등지고 서서 공중에 주먹을 휘두르는 반대 퍼포먼스를 폈다. 직원 600여명은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철회를 청원했다. 원더우먼 논란은 유엔이 여권 강화를 위해 싸울 여성을 현실 세계에서 찾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원더우먼은 75년 전 분명히 ‘미국의 방식’으로 탄생한 슈퍼 히로인이다. 현재와는 다른 시대의 캐릭터다. 유엔 직원들의 지적처럼 더 현실적인 여성을 명예대사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6-10-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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