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냉면의 역설/서동철 논설위원
수정 2013-06-15 00:00
입력 2013-06-15 00:00
냉면의 역설은 또 있다. 평양냉면의 사리를 구성하는 주재료는 메밀이다. 주성분은 루틴으로, 지방과 콜레스테롤 성분을 인체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냉면이나 일본의 메밀국수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기는 명절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던 전통시대 메밀은 당연히 같은 이유로 ‘나쁜 식품’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남천(1911~1953)의 수필 ‘냉면’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한방에서 냉면은 백해(百害)는 있을지언정 일리(一利)도 없는 식품이라고 한다’고…. 메밀은 보릿고개를 넘기 힘겨웠던 시절 건강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배고픔을 참기 위해 심었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영양 과다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먹거리로 위상이 역전된 것이다.
마지막 역설은 조미료다. 이른바 ‘화학 조미료’라고 부르는 글루타민산나트륨이다. 얼마 전 조미료를 쓰지 않는 냉면집을 ‘착한 식당’으로 소개하고자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냉면은 평안도가 고향이지만, 1920년대 이미 서울에 줄지어 냉면집이 생겼을 정도로 일찍부터 대중화됐고, 적지 않은 냉면집이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새롭고 값비싼 화학 조미료 ‘아지노모토’를 쓴다는 사실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부각시켰다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진리가 어느 시대에도 똑같은 진리는 아닌 것 같다. 냉면 하나만 봐도 한때의 정설이 시간이 흐르면 역설이 되지 않는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를 평생 금과옥조로 여기며 우기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냉면이 전해 주는 교훈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3-06-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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