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여름 벌판/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수정 2021-08-06 01:20
입력 2021-08-05 20:40
벌레가 잎을 갉아먹듯 아파트들은 서울에서 먼 쪽의 논바닥을 점점 파먹어 들어간다. 벼가 자라는 들판을 만나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한다.
장미의 붉음이 황홀하다 한들 깊고 넓은 저 초록의 심해에 견줄 수 있을까.
그냥 씨를 뿌려 놓는다고 짙은 녹색의 결실이 생길 리 없다.
서 있기만 해도 속곳까지 젖는 더위 속에서 농부는 굵은 땀을 흘리며 벌판을 가꾸었다. 땀은 방울방울 떨어져 자라나는 벼들의 거름이 됐으리라.
농부의 힘만으로 옹골찬 열매를 얻을 수 없다. 때맞춰 쬐어 주고 퍼부어 주고 불어 주는 태양과 비와 바람이 없다면 곡식이 제대로 영글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걸작이 경이롭기만 하다. 어떤 창조물을 이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벌써 여물어 가는 벼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올가을 햅쌀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먹을 것 같다. 인간의 땀방울과 자연의 섭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1-08-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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