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토란잎 우산/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수정 2019-07-11 02:05
입력 2019-07-10 21:18
내 밭도 아니면서, 이 밭에서 내가 가장 아껴 보는 것은 토란이다. 촛농을 칠한 것처럼 빗물이 데굴데굴 미끄럼을 타는 재미나는 잎사귀. 어린 날에는 세숫대야만 한 토란잎으로 우산을 쓰고 싶어 여름비를 기다렸다. 솥뚜껑만 한 잎으로 양산을 써보자고 땡볕에 덤비기도 했고.
토란대를 귀하게 다독거리다 멀쩡한 잎사귀를 선물처럼 뚝 꺾어 주시던 손길. 알토란 같은 그날이 문득 생각나서 어쩌자고 나는 구월의 알토란국 한 그릇이 지금 까무러치게 먹고 싶어진다.
장맛비가 알맞게 오는 날, 우겨서라도 딸을 데리고 토란을 보러 와야겠다. 또닥또닥 보슬비, 우둑우둑 장대비가 토란잎에 듣는 낮고 높은 소리를 같이 들어야겠다. 가을 토란국은 여름비 소리를 섞어 먹어야 제맛인 것을, 눈 감고 귀 열면 목젖이 뜨끈해지는 그리운 맛 한 그릇쯤은 전해 주고 싶어서.
2019-07-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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