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오백나한의 얼굴/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수정 2019-05-14 02:07
입력 2019-05-13 23:32
나한(羅漢)은 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뜻한다. 2001년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 터에서 발견된 나한상 300여점 중 88점이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다. 폐사된 절터에 묻혔다가 500여년 만에 극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신비롭다. 마치 땅속에 있는 듯 어두운 불빛 아래 각자 개성 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한상을 보자니 삼라만상의 희노애락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와 가장 닮은 얼굴을 찾으며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다 조선 승려 편양언기의 시구에 눈길이 멎었다.
“구름이 달리지 하늘이 움직이는가/배가 갈 뿐 언덕은 가지 않는 것을/본래는 아무것도 없는 것/어디메서 기쁨과 슬픔 이는가.”
coral@seoul.co.kr
2019-05-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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