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쓸모없는 일/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수정 2018-10-23 21:31
입력 2018-10-23 20:34
‘굳이’ 하고 있는 일들은 매조지가 시원찮다. 묵나물은 몇 년째 묵혀만 두고, 붙들고 씨름한 바짓단은 바늘땀이 드러나 끝내 수선집으로 보낸다. 그러니 굳이 내 마음 좋자고 하는 일들은 별 소득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가 널린 집이 몇 없다. 전기 건조기에 밤낮없이 들볶아 말리니 볕바른 빨랫줄에 옷가지가 내걸리는 풍경이 사라진다. 햇볕에 안달하지 않고 감쪽같이 시간의 효용을 챙기는 삶들이 득의만만.
효용의 주름살에 덮여 버린 삶의 잔무늬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 품을 꼭 여민 콩꼬투리 속에는 여름 태풍이 들앉았는데. 햇볕 아래 묵나물을 구슬리면 짧아지는 태양의 꼬리가 보이고. 목이 늘어난 양말짝을 널다 보면 누가 말 안 해도 그 누구의 온 하루를 한눈에 알아채고.
덜떨어진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베란다에 묵나물, 양말짝들을 그득 널어놓고. 누가 퍼가는 것도 아닌데, 시월의 잔양이 아까워 벌벌 떨면서.
2018-10-24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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