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봄 야생화/손성진 논설실장
손성진 기자
수정 2017-05-08 22:07
입력 2017-05-08 22:04
요란하지도 않고 아우성치지도 않는다. 출가를 앞둔 수줍은 색시처럼 야생화는 웃음만 살폿하다. 의미를 알아주어서 꽃이 되는 게 아니라 알아주지 않아도 이미 꽃이다. 그런 겸손함과 자존심을 몰라주는 우리는 교만한 장미만을 꽃이라 부른다.
남도의 봄길에서 만난 야생화는 너무 순결해 보여서 도리어 서글펐다. 좀 오래 버텨도 좋으련만 흰 속살을 아쉽게 내보여 주곤 금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야생화. 언제까지 기다린다고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 야생화.
흩뿌리는 빗속에서 봄꽃 잎이 휘날린다. 이름 없는 지천의 들꽃들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곧 폭풍우 치는 계절이 닥칠 것이다. 게으른 무지렁이에겐 너무 짧았던 봄날은 벌써 가고 눈물 머금듯 이슬 품은 야생화도 지고 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너만큼 고울까, 그래서 슬퍼할 것은 없다.
손성진 논설실장
2017-05-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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