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돌아온 지갑/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기자
수정 2016-06-17 18:01
입력 2016-06-17 18:00
낡아 해진 데다 지폐 한 장 없이 카드꽂이에 불과한 배불뚝이 가출 지갑의 운명이란 뻔하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속살을 힐끔 훔쳐본 뒤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것이다. 몇 단계의 분류 과정을 거쳐 용광로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재로 바뀔 지갑을 체념할 때쯤 휴대전화 벨이 울리고 생면부지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떠올랐다. “지갑 잃어버리셨죠?”
동네 주변 벤치 밑에서 주웠는데 명함과 신분증을 보고 전화를 걸었단다. 혹시 몸은 상하지 않았느냐고 걱정까지 해 준다. 그 관심과 배려가 진심으로 고맙다. 안 그래도 신용카드 분실 신고며, 신분증 갱신이며, 당장 해야 할 일로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런 은인이 또 있을까 싶다. 온전하게 돌아온 지갑 속에는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인정(人情)까지 덤으로 끼워져 있었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6-06-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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