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노숙자와 노트북/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수정 2016-04-04 21:00
입력 2016-04-04 20:52
하지만 남성 노숙자들 대부분은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에 때 묻은 옷을 입고 있어 노숙자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밤늦은 시간도 아닌데 신문지를 덮고 일찌감치 누워 있거나 옆에 빈 소주병이라도 놓여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퇴근길 지하도의 한 남성 노숙자는 좀 달랐다. 행색은 노숙자였으나 그가 머무는 눈길을 따라가 보니 노트북이 아닌가. 그는 노트북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뭔가를 쓰고 있었다. 노숙자와 노트북,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편다. 혹 그는 가족들과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아닐까. 이메일 속 그가 있는 곳은 서울의 ‘길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6-04-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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