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만약에 말입니다”/정기홍 논설위원
수정 2015-01-15 03:52
입력 2015-01-15 00:18
‘말입니다’는 시집 서문에서 뽑아서인지 글맛을 당긴다. ‘큰 길 말고 말입니다. 뒤로 가면 아무렇게 난 한적한 오솔길이 있다 말입니다. 그 작은 길에 큰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딱 붙어 나는 작은 민들레가 있다 말입니다.’ 글쓴이의 의도처럼 호젓한 길에 홀로 자리 잡은 민들레를 귀하게 만든 게 이어진 ‘말입니다’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둘은 말로는 제값을 못 받는 것 같다. 말에 전제가 있으면 부정 이미지가 끼고, 말투에 덧대면 군더더기가 돼 듣기에 거북하다. 가시지 않은 글맛 뒷끝에 중얼거린다. “만약에 말입니다.” 글맛과 말맛은 다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5-01-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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