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단풍 구경/정기홍 논설위원
수정 2014-10-31 04:07
입력 2014-10-31 00:00
아파트 단풍을 구경하다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이른 봄의 정취를 쥐락펴락하는 벚꽃나무의 잎 색깔이 밋밋해 보는 재미가 덜하다. 옛 풍류객은 “단풍 든 잎사귀가 봄꽃보다 더 붉다”고 했다던가. 무릇 생물엔 자태를 뽐내는 때가 있는 것같다. 가치도 각기 다르다. 흐드러진 봄꽃은 꺾어서 갖고 싶지만, 가을 색을 곱게 차려입은 단풍은 주워서 넣고픈 것 아닐까.
단풍은 가경(佳景) 중의 으뜸이다. 한겨울 눈꽃도, 봄꽃도 단풍 옷의 색깔엔 못 미친다. 영리함도 지녔다. 바람이 곧 급해짐을 알고 얼른 몸을 땅으로 내린다.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구절엔 금방 시들어진다는 뜻도 있다지 않은가. 일생에 수십 번밖에 못 보는 게 단풍이다. 이 가을, 부지런해져야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10-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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