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허수아비/이춘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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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0-07-19 00:00
입력 2010-07-19 00:00
고향집 텃밭에 앙증맞게 생긴 허수아비가 눈길을 끌었다. 키는 아주 작지만 붉은 한복이 곱게 입혀졌다.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제법 자란 콩들 사이에 귀엽게 서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서 있는 것 같다. 사방에는 번쩍이는 금줄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새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집 옆 텃밭에 허수아비가 서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대담해진 비둘기나 까치, 꿩 등이 콩, 팥을 먹어치워 버리기 때문에 설치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예전엔 번쩍이는 줄만 쳐도 새들이 얼씬 안 했는데 요즘엔 효과가 없어 어렵게 허수아비까지 세웠다고 하신다.



농민들이 새 퇴치에 애를 먹고 있다. 새들이 영악해져 웬만한 허수아비는 비웃듯이 농작물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폭죽도 터뜨려 보고, 음향기기를 틀어 놓아도 효과가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진화한 첨단 허수아비로 대응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의 한 밭에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마네킹이 진짜 사람처럼 새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나는 새 머리 위에 인간이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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