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사투리/김성호 논설위원
수정 2010-05-21 00:48
입력 2010-05-21 00:00
군 복무시절 경상도 출신 후임병이 그랬다. 아무리 교정을 시켜도 번번이 ‘쌀’이 아닌 ‘살’이다. 놀림삼아 얼차려도 줘 봤지만 그때뿐. 후임병의 입에서 쌀은 어김없이 살로 되살아나곤 했으니. 말투의 멍에는 정말 벗기가 버거운가 보다.
남자 직원들만 있는 어느 직장의 해프닝.“야유회에 여승(여성)을 동반하자.”는 경상도 출신 팀장의 제안이 있었는데. 누구의 공이었을까, 야유회에 비구니가 환히 웃고 나타났단다. 혀에 익은 말 버릇이야 쉽사리 버릴 수가 있을까. 말은 적게 하고, 신중히 들으라 해서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이라는데. 군 시절 뭣하러 얼차려까지 줬을까. 지금도 여전히 ‘살’일 텐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0-05-21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