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처음처럼/김성호 논설위원
수정 2010-04-27 00:40
입력 2010-04-27 00:00
20대 초반 라일락에 얹힌 단상은 희망이다. 논산 훈련소에 막 입소했을 때, 그러니까 바로 지금 무렵. 뚝뚝 떨어지는 목련의 어지러운 잔해들을 치우는 사역은 정말 싫었다. 탐스럽고 곱기만 한 목련의 시든 꽃잎들이 어찌 그렇게 지저분하고 보기 흉했던지. 스러지는 목련들의 한편에서 화사한 꽃과 향기를 수줍은 듯 피워내던 라일락 나무들. 희망을 얹어 바라보던 그 라일락들이 눈에 선하다.
네번째 달력 장을 뜯어내야 할 즈음. 원단에 옹골차게 품었던 꿈과 약속들은 얼마나 이루고 지켜왔을까. 어중간한 봄의 자락에서 쳐다보는 라일락이 오늘은 유난히 더 곱다. 꿈은 멀고 약속도 숱하게 어겼지만, 희망만은 잃지 말아야지. 처음처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0-04-27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