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 위의 삶/함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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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2-30 12:00
입력 2009-12-30 12:00
몹시도 추웠던 날 인사동에서 저녁모임이 있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골목길의 어두운 담 너머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갈 곳 없는 고양이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기 힘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들여다 봤지만 어둠 속에서는 찬바람만 쌩하고 불어 나올 뿐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임을 마치고 다시 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울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여운 고양이….

그날 밤 덕수궁 앞 지하도를 지나가게 됐다. 커다란 박스로 바람을 막고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찬 기운이 올라와서 잠시 앉아 있기도 힘들 텐데 이런 데서 이 추운 날 잠을 자야 하다니 얼마나 괴로울까. 가슴이 짠했다.



길 위의 삶은 모두에게 고달프다.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 몸 건강하고, 등 따뜻하게 잘 수 있고, 내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새삼스럽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09-12-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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