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역지사지/김성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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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9-02 00:40
입력 2009-09-02 00:00
얼핏 보기에도 심각하게 아픈 이들. 목소리가 강파르고 의사를 찾는 몸짓들도 숨가쁘다. 늦은 밤 종합병원 응급실. 심장병이 도진 노친이 심상치 않다. 몰아쉬는 숨과 신음소리가 얽힌 게. 이미 한 번 겪은 터라 걱정이 크다. 응급실로 모신 지 한참인데. 의사는 보이지 않고.

아, 그렇구나. 20대 초반 많이 겪었던 익숙한 광경이다. 미군 후송병원 카투사 근무 시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던 중환자들. 탱크며 헬기 폭발로 찢긴 채 사망 직전 병원에 실려온 군인들, 지뢰를 밟아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이들…. 사경에서도 뭔가를 요구하는 눈빛들은 정말 간절했는데.



아직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노친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지는데. 급한 성격에 목소리를 높인다. 간호사에게 짜증을 내보지만 무대응.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는데 누군가 손을 잡아 막는다. 하긴 이 시간 이곳에 아프지 않은 이가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심결에 떠오른 한마디. 역지사지. 그때 미군 병원 시절, 많이 아팠던 이들도 나를 그렇게 원망했겠지.

김성호 논설위원
2009-09-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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