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살얼음 승부, 한 표의 무게/육철수 논설위원
수정 2012-12-19 00:00
입력 2012-12-19 00:00
930표 차이면 플로리다 유권자의 0.017%가 미국 대통령의 당락을 결정지은 셈이다. 집계가 오락가락한 것은 천공(穿孔) 투표용지가 문제투성이였던 탓이다. 어쨌거나 당시 선거는 박빙 승부에서 표의 중요성과 위력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깨끗한 승복’도 역사에 남을 만하다. 고어는 전국 총득표에서 33만 8000표를 더 얻었다. 하지만 선거제도에 막혔다. 그는 연방대법원의 검표 중단 판결도 받아들여 미국이 안정을 되찾게 했다.
오늘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지금 상황은 진보·보수 진영이 서로 똘똘 뭉쳐있어 예측 불허다. 2000년 미국 대선처럼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표율에 따라 특정 후보의 유불리가 거론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권자들에겐 무거운 책무가 떨어졌다. 살얼음 승부에서 ‘한 표’의 가치와 힘은 보통 때에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보·혁 구도’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인물·이념·정책 등에서 어느 쪽인지 분간이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이런 요소가 정책이나 인물을 꼼꼼히 따져 투표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유권자에게 이성·논리적으로 판단하라는 조언은 그래서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투표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투표를 이념·지역·세대·계층·성별 등에 따라 해도 그게 ‘솔직한 민심’일 것이다. 이성·논리 운운하는 것보다 이런 투표가 오히려 나라를 이끄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새 대통령이 표심을 읽고 지역감정은 어느 정도고, 세대 갈등은 어떠하며, 이념의 분포는 어떤지 제대로 알아야 포용을 하든 화합을 하든 할 게 아닌가. 그러자면 투표로 민심을 정확히 알리는 게 최선이다. 마뜩잖은 대통령과 5년을 보내기 싫으면 더더욱 투표장을 찾을 이유가 되지 않겠나.
더구나 이번처럼 접전에서는 극소수 투표자들에 의해 나라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 공휴일궤(功虧一)라 했듯, 태산을 쌓는 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다 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한 표가 아쉬운 지지 후보에게 ‘한 줌 흙을 보태는’ 심정으로 아낌없이 표를 주면 좋겠다. 투표율이 높아야 새 대통령에게 힘이 생기고, 국민에게 더 관심을 가지며 더 겸허해질 것이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임을 보여주는 오늘, 소중한 한 표를 ‘시대교체’든 ’정권교체’든 국가대사에 가치 있게 써 보자. 투표율이 높기를 바라면서도 지지세력의 양분에 따른 선거 후유증이 벌써 걱정된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혼탁과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일은 새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ycs@seoul.co.kr
2012-12-19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