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추행 고소사건 유출정황, 누설자 찾아 엄벌해야
수정 2020-07-15 01:11
입력 2020-07-14 20:28
수사상황 유출, 비밀누설 범죄행위
경찰, 진상조사 위해 수사 계속해야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를 보호하려고 수사 내용을 보안에 부친다. 또 정황 증거들이 많아 피고소인에게 마지막까지 보안을 지켜야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가해자가 성추행 증거를 인멸하거나 고소인을 회유 또는 해코지할 수도 있는 탓이다. 이번 사건을 돌아보면 고소인은 지난 8일 오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9일 오전 2시 30분까지 10시간에 걸친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박 전 시장이 유서를 작성하고 9일 오전 10시 44분에 공관을 나섰다. 고소인에 대한 밤샘 진술이 진행됐다는 정보가 박 전 시장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박 전 시장이 그 같은 대응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8일 오후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소문도 확인돼야 한다.
이런 의혹에 대해 경찰은 청와대에 관련 상황을 보고했지만 박 전 시장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하고, 청와대도 유출 의혹을 부인했다. 경찰이 청와대에 관련 정보를 알리는 것은 통상적인 절차인 만큼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에게 고소 내용이 알려졌다면 이는 공무상 비밀 누설로 범죄행위에 가담한 것이 된다. 따라서 고소 내용 유출이 사실이라면 어느 기관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했는지를 샅샅이 밝히고 엄벌해야 한다. 고소 내용이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바람에 관련 사건의 실체 규명도 어려워졌다는 지적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찰은 어제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소인이 2차 피해에 대해서도 고소장을 제출한 만큼 경찰은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관련 수사를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피고소인이 부재한 탓에 형사처벌 가능성은 없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서울시 직원이 존재하는 만큼 진상 규명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외부 인사가 다수 포함된 자체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또 서울시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근거로 성폭력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체계적으로 마련했음에도 작동하지 않은 만큼 개선안을 찾아야 한다.
2020-07-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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